1970년대 초반 한반도 데탕트의 열기는 빠르게 식었다. 1972년 남북한 모두 독재를 강화하며 적대적 공존 체제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이 논문은 한반도 데탕트를 지지하던 프랑스가 남북한의 독재 강화를 어떻게 인식하고 이해했는지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프랑스 외무부 문서보관소의 소장 외교문서들과 일간지 르몽드 기사들을 일차 사료로 활용한다. 한국은 1969년 대통령 3선을 허용하는 개헌을 했고, 북한은 1970년 노동당 5차 대회에서 당의 지도 이념으로 주체사상을 언급했다. 1971년 여름부터 적십자회담을 통해 시작된 남북대화는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의 성과를 도출했다. 프랑스는 남북대화를 지지했으나 남북한은 시간을 끌며 데탕트 확산을 주저했다. 1972년 한국의 유신체제 형성과 뒤이은 북한의 사회주의헌법 제정은 한반도의 적대적 공존 체제를 확립했다. 남북의 갈등과 대결은 다시 확대했고 1973년 8월 남북대화가 중단되었다. 프랑스는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훼손한 한국의 유신체제와 한반도 데탕트 후퇴에 비판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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