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군혁명시기의 북한 문학예술에서는 ‘가요예술’의 중요성이 특별히 강조되었고, 가요의 사상예술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시의 노래화’가 추진되었다. 당 문예정책의 차원에서 시인들이 창작한 ‘시’를 ‘대중가요 가사’로 장르 변용시키고, 시인들을 ‘시인’에서 ‘대중가요 작사가’로 그리고 ‘영화노래 작사가’로 장르 이동시키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당이 인민에 대한 핵심적 소통 방법을 인쇄매체인 ‘문학’ 장르에서 방송매체인 ‘음악’과 ‘영화’ 장르로 변경해 나갔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선군시기에 북한의 조선로동당이 이와 같은 ‘대중화 전략’을 추진하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선군시기에는 ‘조국수호’와 ‘경제재건’을 목표로 내세우고, 새 세대인 ‘청년계층’을 그 주체로서 호명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문학예술의 주된 수용자를 ‘청년계층’으로 재설정하게 되었다. 둘째, 당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인 ‘당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수용자인 ‘청년계층’의 방송매체 친화적인 문화 성향을 반영할 수밖에 없었다. 셋째, 흥미성과 통속성이 강한 대중예술 장르를 활용하면서도 높은 사상성과 예술성을 견지하기 위해서는, 시인들을 음악·영화 장르에 투입하여 ‘대중가요 작사’와 ‘영화노래 작사’를 담당하도록 할 필요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북한 조선로동당이 추진한 ‘문학예술의 장르 변용과 이동’은 북한의 체제 유지를 위한 새로운 전략적 선택이었다. 하지만 선군시기 북한의 문학예술은 매체 및 장르라는 형식적 변화에 비례할 만큼의 메시지라는 내용적 변화를 보여주지는 못하였다. ‘전시가요의 재소환’을 통해서는 ‘전쟁승리사상’을 ‘조국결사수호정신’으로 변형시켰지만, 국가의 존립이 개인의 삶을 보장한다는 국가중심의 가치관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청년정신의 재정립’을 통해서는 ‘모범성’을 ‘도전성’과 ‘진취성’으로 전환시켰지만, 국가의 발전을 위해 갖추어야 하는 청년의 자세를 제시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애국심의 재규정’을 통해서는 ‘희생정신’을 ‘주체의식’으로 치환시켰지만, 개인의 행복보다는 국가의 번영이 우선적 가치임을 전제한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이 세 가지 주제를 관통하는 정신은 여전히 집단주의적 획일성이라고 할 수 있다. 매체와 장르의 변화가 일시적인 흥미와 관심을 끌 수는 있지만, 선군시기 북한 청년들의 마음을 움직이거나 행동을 변화시키기는 어렵다. ‘고난의 행군’과 더불어 유입된 자본주의 시장경제체계의 영향으로 선군시기 북한 청년계층은 물질주의와 개인주의를 경험하게 되었고, 이것이 ‘인민성’에 변화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즉, ‘인민성’의 변화가 역으로 ‘당성’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 문학예술이 매체 및 장르의 변화와 더불어 ‘인민성’과 ‘당성’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반영해낼 수 있을 때, 그것은 진정한 소통의 창구로서 당과 인민의 관계 재정립을 실현시켜 나가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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