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은 분단 이후 각기 다른 이념과 체제 아래 상이한 법제도를 발전시켜왔다. 남한은 자유민주주의와 입헌주의에 기반하여 법의 지배를 중심으로 하는 체계를 구축해온 반면, 북한은 사회주의 법이론과 주체사상, 당의 우위를 원리로 하는 법체계를 고수하고 있다. 이로 인해 양측은 헌법의 제정 방식, 법률의 기능, 기본권의 이해, 권력의 구조적 운용 등에서 본질적인 차이를 보이며, 이러한 차이는 향후 통일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법적 충돌을 야기할 수 있다. 통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단순한 제도 통합이나 법률 이식의 문제를 넘어, 양 체제의 법적 기반과 운영 원리를 어떻게 조화롭게 연결할 것인지에 대한 실질적 기준 마련이 필수적이다. 특히 남한법을 북한 주민에게 적용하거나, 반대로 북한법을 남한 주민에게 적용해야 하는 상황은 법적 정당성, 명확성, 수용성 등의 다양한 쟁점을 동반한다. 개성공업지구는 이러한 법 적용 문제를 실제로 드러낸 대표적인 사례이다. 북한의 실효적 관할하에 위치하면서도, 남한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노동력이 결합한 이 지구에서는 남북한 양측의 법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동했다. 남북 당국은 여러 차례 합의서를 통해 민사·형사·행정 분야의 처리 방식을 조율하였으며, 남한 기업인과 근로자들은 해당 합의와 관련 법령에 따라 제한적이나마 활동을 보장받았다. 특히 일부 형사사건에서 남한 법원이 개성공단 내 발생한 사건에 대해 남한법을 적용하여 관할권을 행사한 판례는, 통일 이후 법적통합의 방향을 가늠하게 하는 중요한 선례로 평가된다. 남북 법제 간의 충돌을 단순히 이념적 차이로 환원하기보다는, 구체적 사안별로 법적 안정성과 실현 가능성을 중심에 두고 접근해야 한다. 개성공단의 사례는 이러한 실천적 해법을 시험한 장으로서, 향후 법제 통합 논의에 있어 귀중한 사례적 자산이 된다. 통일을 향한 법제 정비는 추상적 이상이 아닌 구체적 기준과 사례를 바탕으로 현실적 설계를 필요로 하며, 무엇보다 사람 중심의 법적 안정성과 신뢰 확보가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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