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의 문인들이 서울에서 함께 모여 조선문학동맹을 결성하기로 논의하였는데 이러한 결정은 모스크바 삼상 회의 이후에도 크게 바뀌지 않고 이어져 1946년 2월에 조선문학가동맹이 정식으로 수립되었다. 조선문학가동맹은 미국과 소련을 비판적으로 보면서도 이들의 협력을 통해 조선 임시정부를 수립해야 한다고 하면서 미소 공동위원회를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문인들과 친소련의 관점에서 미소 공동위원회를 지지하는 문인들 사이의 차이가 일정하게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미소 공동위원회를 통해 조선 임시 정부를 수립하고 이를 발판으로 삼아 통일독립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공통된 전망을 갖고 출발하였다. 1차 미소 공동위원회가 결렬된 이후에는 회의의 재개를 요청할 정도로 미소공동위원회의 성과를 간절하게 기다렸다. 하지만 어렵게 열린 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나자 내부적으로 균열이 가기 시작하였다. 염상섭 정지용 등의 비판적 지지자들은 미국과 소련에 거리를 두면서 남북의 자주적인 협상을 요구하였고, 임화 김남천 등의 친소적 지지자들은 남한 민중의 궐기를 호소하였다. 친소 지지자들이 미군정의 탄압으로 인해 월북하자 비판적 지지자들이 조선문학가동맹을 주도하게 되면서 남북협상의 단선반대 운동이 화두가 되었다. 특히 1948년 3월 12일 유엔 조선위원회가 최종적으로 단선을 결정하고 이에 따라 김구 김규식 홍명희 등이 단선을 반대하는 성명을 내고 이어서 북한이 3월 25일 호응하면서 남북협상의 단선반대가 전면화되었다. 남북협상의 단선반대를 주장하였던 조선문학가동맹은 남북협상을 환영하는 성명을 내고 나아가 김구 김규식으로 하여금 주저 없이 평양으로 가라고 하는 문화인 성명서 작성에 앞장을 서게 된다. 남북협상운동을 지지하는 운동이 제주도에서 일어났는데 미군정이 이를 강압적으로 탄압하자 이에 항의하는 성명서를 조선문학가동맹이 발표한다. 각지에서 일어나는 남북협상의 단선반대 운동을 주도하였던 조선문학가동맹은 이승만 단독 정부 수립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제주도의 단선반대 운동을 무력으로 탄압하려는 정부에 대해 학살을 멈추라는 성명서를 내기도 하였다. 이처럼 남북협상의 단선반대운동을 주도하면서 동족상잔의 위험을 경고한 조선문학가동맹은 제주도의 단선반대 항쟁과 연대하여 평화적 남북통일을 기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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