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체제 정당성을 확보하고 경제건설에 인민을 동원하기 위해서 재만 조선인 항일빨치산 투쟁사를 대대적으로 정리, 선전해왔다. 그것은 중국의 조선족인민들에도 영향을 주었다. 영향을 받은 일부 조선족 인민들이 김일성을 숭배하고북한을 조국으로 간주하였으며 중국에서 어려운 일이 닥치기만 하면 북한으로 불법 이주하였다. 한편 북한은 만주의 항일 역사 자료의 수집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일부의 연변 조선족 간부나 문화인들이 북한의 자료 수집에 협조를 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석동수는 항일빨치산투쟁 유물을 북한에 제공하거나 북한 조사단의 중국현지답사를 지원하였다. 나아가서는 북한으로 탈출해서 조선혁명박물관 관장 직을맡았다. 평양에 들렀다가 이와 같은 사실을 알게 된 조선족 변사 해원은 자신도항일 역사 자료를 수집해 북한으로 가고자 결심을 하였다. 중국에 돌아온 그는 순조로운 자료 수집과 북한행을 위해 사람들에게 자신은 평양에서 석동수를 만났노라고 거짓말을 하였다. 이 거짓말로 인해 그는 나중에 큰 고난을 당하였다. 다른 한편 연변의 4인방 세력은 중국 조선족과 북한 사이를 분리시키는 것이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그들은 문화대혁명을 활용해 조선족의 김일성 숭배 및 북한 조국관을 말살하고자 했다. 그들은 조선족 사회 내에 강력한 북한 특무 조직이 있다고 모략을 했다. 이어서 그들은 북한 특무 적발 운동을 대대적으로전개했다. 그 가운데 많은 조선족 인민들이 북한 특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고통을 당해야 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은 해원이었다. 석동수 특무 조직의 일원임을 자백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허위 자백은 거부했지만 감옥살이를 해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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