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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헝가리 사태에 대한 남한의 인식과 대응

South Korea’s Perception and Action on the Hungarian Revolution of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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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도민
소속 및 직함 서울대학교
발행기관 역사문제연구소
학술지 역사비평
권호사항 (119)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302-333
발행 시기 2017년
키워드 #헝가리혁명   #냉전   #포스트식민   #한반도 분단   #민족주의   #김춘수   #김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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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냉전의 최전선에 위치한 남한은 1956년 10월 헝가리에서 시작된 반소 봉기에 대해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졌음에도 직접적으로 개입하고자 했다. 먼저 남한 정부와 신문들은 헝가리 사태를 반소에서 시작하여 반공으로 확대되어 반공자유세계의 범위가 확대되길 원했다. 따라서 남한정부는 적극적으로 헝가리 의거민을 위한 의연금 모금 및 자유세계의 헝가리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다. 나아가 헝가리 사태는 한반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남한에서는 헝가리 사태가 1956년 11월 한 달 내내 헝가리 인민들이 반소와 반공을 부르짖으며 봉기했듯이 북한 인민들도 들고 일어나길 바라는 북한동포궐기촉성 대회가 전국적으로 펼쳐졌다. 흥미롭게도 남한 정부와 신문이 북한동포가 들고 일어날 수 있는 이유를 일제 식민지 시기 함께 반일을 했던 한민족의 민족성에서 찾았다. 헝가리 사태를 진압하기 위한 1956년 11월 4일 소련의 헝가리 무력침공은 한반도 전쟁 위기를 야기했다. 자유세계가 소련의 침공을 방관하는 사이 북한이 다시금 6.25전쟁을 재발할지 모른다는 공포가 퍼졌고 이런 위기는 여당이 사회통제를 위해 국정보호임시조치법을 제정하려는 시도와 맞물렸다. 동일한 헝가리 사태에 대해 이승만정권이 사회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근거로 제시한 반면, 야당은 바로 반독재, 민주화와 자유를 염원하는 대중의 저항을 보여주는 사례로서 헝가리 사태를 야당과 다르게 전유(專有)했다. 결국 1956년 발생한 헝가리사태는 한국에서 냉전과 탈식민 그리고 분단이 상호교차하는 과정을 다이내믹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