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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항복과 한반도 분단: 항복의 지연과 분단의 책임

Japan’s Surrender and the Division of the Korean Peninsula: the Delay of the Surrender and Responsibility of the Divi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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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최영호
소속 및 직함 University of Hawaii at Manoa
발행기관 역사문화연구소
학술지 역사문화연구
권호사항 (62)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159-226
발행 시기 2017년
키워드 #한반도분단   #태평양전쟁의 종결   #일본의 항복   #한국의 독립   #최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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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한반도 분단의 역사적 근원은 아직 정확하게 규명되어 있지 않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자 소련의 동의하에 미국이 “일반명령제1호”를 반포하여, 38도선을 경계로 미국과 소련이 남·북한을 각각 점령함으로써 한반도가 분단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분단의 근원을 충분히 설명해 주지 못한다. 분단의 직접적인 원인은 소련이 일본에게 8월 8일 선전포고를 하고 38도선 이북지역에 주둔하게 된 결과이다. 선전포고할 때까지 소련과 일본은 중립조약을 맺은 상태였다. 만약 소련이 참전하기 전에 일본이 항복하였다면 소련이 북한에 진주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실제로 일본은 1944년 하순부터 이미 완전 패전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었다. 특히 1945년 5월 독일이 항복하자 일본은 승전의 희망을 버리고 종전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만약 일본이 이때 직접 미국과 접촉하여 종전을 모색했더라면 아마도 전쟁은 쉽게 끝났을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미국을 기피하고 소련에게 중재자가 되어달라고 요청하였다. 이로 인해 일본의 항복은 지연되었고 소련에게 참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말았다. 일본이 소련참전 이전에 항복하였다면 소련군의 북한 진주는 없었을 것이었고 한반도 분단도 없었을 것이었다. 한편 소련은 얄타협정에서 대일 전쟁에 참가하는 대가로 만주의 막대한 이권을 약속받은 상태였고, 이 이권은 소련이 참전을 했을 경우에만 획득할 수 있는 것이었다. 소련의 공격을 예견하고 있었던 일본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소련에게 중재를 요청하였다. 중재요청에는 일본이 기도한 황당한 꼼수가 있었다. 즉 일본은 중국에서 일본군이 철수한 후에 형성될 “힘의 공백지”를 둘러싸고 미국과 소련이 충돌하도록 유도한 후 소련과 손을 잡고 미국에 대항한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소련의 야망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환상이었다. 그 결과 일본의 항복이 지연되었고 한반도 분단의 비극을 초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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