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역도산>(2004)은 한국과 일본시장을 동시에 겨냥해 제작되었지만 상업적으로도 비평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영화는 한류의 붐 속에서 제작되었으며, 일본 등 아시아 국가에서 상영될 목적으로 뚜렷한 민족적 색채를 제거했다. 이 영화에서 역도산은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세계인으로서 스스로를 호명했다. 물론 이는 일차적으로 국제적인 영화시장에서 마주하게 될 민족적인 거부감을 상쇄하기 위한 상업적 전략이었다. 그러나 본 연구는 이것이 표층적인 차원의 이유이고 보다 심층적인 차원에서는 역도산이라는 인물에 각인된 냉전의 기억, 특히 북한을 다루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해석한다. 그것은 프레드릭 제임슨이 제기한것처럼, 다루어서는 안 되는 것에 대한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봉쇄’인 것이다. 이점에서 <역도산>이 추구하는 트랜스내셔널리즘은 ‘내셔널’한 것을 지워냄으로써얻어진 것이며, 세계인이란 남한, 북한, 일본 그 어느 하나도 역사성과 민족성을제대로 재현할 수 없었기 때문에 파생된 하나의 균열된 형상이다. 영화의 중반부이후 역도산이 특별한 이유 없이 편집증적이고 자기파괴적이 되어 가는 것은 그에게 각인된 역사와 민족의 언어를 말할 수 없음으로써 비롯된 일종의 남성 히스테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본 연구는 영화 <역도산>이 역사와 민족, 그리고 북한과 관련한 냉전의 기억을 다루지 못함으로써 균열된 세계인과 모호한 트랜스내셔널리즘으로 귀착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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