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은 개성을 대표하는 특산품이다. 한반도의 분단은 개성 인삼업의 단절을 가져왔고 이에 따라 남북은 각 체제가 지향하는 생산․판매방식으로 인삼업을 재편했다. 이 글은 1945~1958년 남북 개성 인삼업을 파악하여 해방 이후 ‘개성인삼’의 실체를 밝혀내는 데에 목적이 있다. 남북한은 인삼을 전매제를 통해 관리했고 각각 농지개혁․토지개혁를 실시하여 인삼포의 소유권을 조정했다. 해방 직후 남한의 인삼업은 미군정과의 갈등으로 민간인삼조합은 일원화 되었고 인삼포는 감소했다. 북한은 국영삼포를 중심으로 인삼업이 주도되어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었고 홍콩항을 통해 수출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개성은 ‘신해방지구’에 편입되었다. 북한은 인삼업의 정상화를 위해 국영삼포와 개인경작자를 통해 인삼을 생산했으며 부족한 인삼기술자 양성에 주력했다. 개인경작자들의 증산과 국영삼포, 황해도 인삼관리소 산하 개성출장소의 노력으로 인삼업은 점차 정상화되었다. 이에 따라 인삼업은 국영삼포와 개인경작자로 양분화 되어 생산되었다. 1955년 북한에서 농업협동화 운동이 본격화 되자 개성의 각 협동농장은 특작반을 구성하여 인삼을 생산하면서 국영삼포, 협동조합, 개인경작자로 3분화 되어 생산되었다. 1956년 전원회의 이후 인삼 생산이 협동농장에 의해 주도되자 1958년 개인경작자가 협동농장에 완전히 흡수되면서 인삼업은 국영삼포와 협동조합으로 양분화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개성인삼의 사회주의화는 전통시기부터 민간이 주도했던 개성 인삼업의 전통이 사회주의를 만나면서 재구성되는 과정이었다. 이는 북한의 특용작물 농업협동화 과정의 일면을 밝혀내면서도 획일적이고 급진적인 농업협동화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데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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