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식민지 조선의 막대한 물적ㆍ인적 자원이 일제에 의해 수탈되었음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수산자원에 대한 수탈은 다수의 관련 연구 성과가 생산되었음에도, 아직도 쌀과 같은 토지 생산물에 대한 수탈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는 실정이다. 강점 이전부터 한반도 해역에서의 어업에 진출한 일본인들은 식민지 권력의 비호, 막대한 자본과 선진적인 漁撈 장비와 어획법을 바탕으로 식민지 수산업의 ‘주인’으로 자리 잡았고. 막대한 수산자원들을 수탈하였다. 일제가 수탈한 수산자원 중 대표적인 것은 바로 정어리이다. 1920년대 중반부터 활기를 띠기 시작한 정어리 어업은 1930년대 후반에 정점을 찍었다. 1937년에는 정어리 어업을 통해 거둔 막대한 어획고를 기반으로 세계 2위의 어획고를 차지할 정도였다. 여기에는 1910년대부터 40년대 초까지 동해 지역에 다량으로 回遊한 정어리 무리의 존재와 1910년대부터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선 일본의 유지공업의 발전이라는 공급과 수요가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당시 일본의 유지공업은 주로 牛脂을 기반으로 하였으나,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공급 부족과 가격 상승으로 인해 대체 원료를 찾게 되었다. 이때 주목을 받은 것이 바로 魚油를 기반으로 한 硬化油였고, 魚油 및 硬化油의 생산을 위해 풍부한 지방을 함유하고 있는 정어리가 대량으로 어획되게 되는 것이다. 한편 硬化油 가공공업은 군사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였다. 경화유 분해 과정에서 생성되는 글리세린이 바로 화약의 원료가 되기 때문이었다. 1935년 당시 소비된 글리세린의 전체 양 중 절반에 가까운 43%가 다이나마이트 및 해군의 화약용으로 사용되었다. 이와 같은 일본 유지공업의 팽창은 식민지 공업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일본의 신흥 재벌인 日窒콘체른에 의해 朝鮮窒素肥料株式會社, 朝鮮油脂株式會社 등이 설립되어 興南과 淸津에 공장을 건설하였다. 또한 이들 공장에 운영에 필요한 다량의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赴戰江 발전소와 같은 발전시설이 건설되었다. 즉 북한 일대를 주산지로 하는 鰮油業의 발전이 식민지 조선의 유지ㆍ화학공업 및 토목ㆍ전기 산업 발전의 모체를 이루게 되었다. 이러한 일본 자본의 침투는 식민지 권력의 군사산업 육성 정책과 맞물려 진행된 것으로 식민 조선의 공업에 새로운 계기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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