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르네 지라르의 이론을 바탕으로 황순원 문학에 나타난 희생양 메커니즘을 검토한다. 지라르는 집단적 폭력을 다룬 텍스트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몇 가지 전형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에 따르면 위기에 처한 사회는 그 책임을 하나의 희생양에게 덮어씌움으로써 위기와 혼란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이때 특정한 개인이 박해의대상으로 지목되는 이유는 그가 가진 희생양의 징후들 때문이다. 저자는 더 나아가 이러한 메커니즘이 실제 사회와 역사에서 발견되는 현상임을 지적한다. 황순원 문학에서 희생양으로 지목되는 이들은 금기를 위반한 인물들, 내부의 소외계층들, 혹은 이방인들이다. 위기에 처한 집단의 다수는 희생양에 대한 박해의 명분을만들어낸다. 박해자들은 희생양들에게 부과된 책임에 대해 진지한 믿음을 가지고 있기때문에 집단적 폭력을 행하면서도 스스로를 자연스럽게 정당화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사회는 위기에서 비롯된 욕구 불만과 불안을 희생양에게 쏟음으로써 대리만족을 얻는다. 작가는 희생양 메커니즘이 발동되는 방식을 다양한 소재를 다룬 단편들을 통해 알레고리적으로 제시한다. 『카인의 후예』는 해방 직후 북한의 토지 개혁을 다룬 작품으로, 작가가 견지해온 희생양 메커니즘에 관한 문제의식을 실제 역사적 배경 속에서 형상화한다. 작품 속 인물들은 군 인민위원회가 주도하는 인민재판의 과정에 참여하는데, 이때 이들은 서로를모방하며 만장일치적 합의에 도달한다. 인물들의 이러한 모방 욕망은 새롭게 등장한권력층의 도구로 활용된다. 공작 대원들의 선동과 강요 아래 지주들이 숙청되어가는과정 속에서 대부분의 소작인들은 권력층의 욕망을 자신의 것으로 재생산해나간다. 군인민위원회는 반동의 죄목을 들어 박해의 명분을 만들어내고 집단 구성원들의 모방욕망과 폭력성을 부추긴다. 질서와 안정의 이데올로기라는 거대한 명분 아래 왜소한개인의 삶은 파괴된다. 이 작품에서 무엇보다 비판적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은 지배 질서를 견고히 세우기 위해 집단적 메커니즘을 계획적으로 활용하는 권력의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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