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강원도 철원군에 폐허로 남아 있는 노동당사에 대해 기억의 장소로서 다층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연구이다. 노동당사는 1946년 북한 노동당의 기관 건물로 건립됐으나 한국전쟁으로 파손된 채 남한 측에 소속되었다. 비무장지대 민통선 내에 방치됐던 노동당사는 현재 부분 보수되어 등록 문화재인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다. 폐허로서 노동당사는 전쟁으로 파괴된 인공적 폐허이자 자연에 의해 낡은 자연적 폐허이다. 그곳은 기억의 장소로서 서로 다른 텍스트의 층이 쌓인 팔림프세스트 구조를 띤다. 역사적 사건과 경험의 흔적이 남아있고 폐허미가 형성되어 수용자의 관점에 따라 달리 해석된다. 휴전 이후 수십 년간 노동당사는 북한 당국의 만행 장소로 규정돼 반공․안보를 위한 공식 기억인 ‘집단적 기억’을 형성하고 남한 사회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활용되었다. 그러나 ‘대항기억’의 관점에 따르면, 노동당사는 성취, 파괴, 트라우마, 노스탤지어 등 상이한 경험의 대상으로서 미시적 접근이 필요하다. 되살아난 억압된 기억들은 현재의 경험들과 융합해 새로운 의미를 형성하며, 그것은 또다시 ‘문화적 기억’으로 재코드화해 미래로 계승된다.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노동당사는 기억의 장소로서 ‘역사적 기념비’가 되는 한편 일종의 반기념비로서 과거의 성취보다는 상실과 소멸을 상기시킨다. 그곳에서는 문화적 형태로 연성기념비에 해당하는 행사가 열리며 다크 투어리즘이 행해진다. 폐허의 노동당사는 남/북, 중심/주변, 번영/몰락, 현존/부재와 같은 상반된 요소들이 혼재하는 언캐니한 공간이다. 그곳에 잠재한 다양한 기억을 파악함으로써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기존의 관점을 돌아보고 현 시점에서 역사를 새롭게 재조명할 수 있다. 노동당사는 여전히 새로운 기억이 첨가되고 있는 역동적인 경험과 문화적 실천의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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