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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淸津의 팽창과 정어리 어업

Pilchard Fishery in the Japanese Colonial Era and Expansion of the Cheongjin Area

상세내역
저자 심재욱, 이혜은, 민원기
소속 및 직함 동국대학교 대외교류연구원
발행기관 역사실학회
학술지 역사와 실학
권호사항 (63)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133-177
발행 시기 2017년
키워드 #淸津   #정어리   #鰮油   #硬化油   #油脂   #鰮油肥   #朝鮮油脂株式會社   #築港   #심재욱   #이혜은   #민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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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일제강점기 東海는 ‘일본의 內海’로써 대륙 진출을 위한 통로로, 그리고 魚族 자원 수탈의 장으로 활용되었다. 이 과정에서 동해안 지역에 다수의 항구 도시들이 출현하였고 팽창하였다. 이중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의 군사 목적으로 개발된 이후 무역항으로, 어항으로, 그리고 공업도시로써 확장을 계속한 ‘식민도시’ 淸津의 모습은 매우 주목된다. 淸津의 확장에 있어 주목되는 점은 바로 정어리 어업과 도시 팽창과의 연관성이다. ‘정어리의 淸津’이라 불릴 만큼 정어리 어업은 淸津의 팽창에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1920년대 중반부터 급증한 정어리의 대량 回遊와 선진 漁法의 유입을 통한 정어리의 대량 어획, 그리고 1910년대 중반 이후 정어리 기름을 가공한 硬化油를 원료로 하는 일본 유지화학공업의 급격한 발전과 같은, 수요와 공급의 측면에서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켜, 대규모의 정어리 어획과 가공을 이끌어 냈다. 그 중심에 淸津이 있었다. 淸津의 도시 팽창과 확장은 1920년대 중반부터 1930년대 진행된 淸津港 築港과 輸城川 改修 등과 같은 도시개발 사업을 통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여기에는 당시 팽창 일로에 있던 정어리 어업이 상당한 영향을 끼쳤음은 물론이다. 한편 도시 개발과 정어리 어업의 발달은, 값싸고 안정적인 원료 공급을 원하는 일본 자본의 침투도 유도하였다. 1933년 본점과 공장을 淸津에 설립한 朝鮮油脂株式會社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후 다수의 정어리 어업 관련 공장 및 중공업 관련 공장들이 속속 설립되면서, 淸津은 무역항·漁港, 그리고 공업도시로써 보다 팽창하게 되었다. 1930년대부터 조선총독부가 진행한 북한 지역 중공업화 정책 및 1931년 ‘만주사변’으로 가속화되는 일본의 대륙침략도 일정한 영향을 끼쳤다. 비록 1942년 이후 정어리 어획의 급감으로 淸津의 정어리 관련 공업은 커다란 쇠퇴를 맞이하였으나, 정어리 어업과 관련 공업은 淸津의 도시 팽창과 공업도시화에 일정한 영향을 끼쳤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