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북·중관계는 중국내전의 직접적인 영향 아래 형성되기 시작했다. 중국공산당은 국민당 군대가 동북지역을 점령하자, 북한 측에 교통로·후방기지·무기·군수물자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했고, 북한 정치세력은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북·중관계는 동북민주연군·중국공산당 동북국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북조선인민위원회의 공식적 계통을 통해 구축되었다. 중국공산당은 북·중관계를 공식적으로 구축하기 위해 상설기구를 설치하였다. 동북국과동북민주연군은 1946년 중반부터 조선주재 동북국판사처·동북국 도문판사처·북흥무역공사 등을 설치해 병력·전략물자의 이동, 전략물자의 구매, 무역거래 등을 추진했다. 이 같은 북·중 간 교류는 소련군사령부의 허가와 지원하에 진행되었다. 북·중관계는 비공식적 계통을 통해서도 형성되었다. 동북항일연군과 조선의용군의 조선인 간부들은 해방 후 동북지역에서 중국공산당의 당·정권기관· 군대를 창설하고 고위간부로 활동했다. 또한 이들은 동북민주연군의 군사간부를 맡아 동북전쟁에 참전했다. 북·중관계 형성과정에는 동북·북한지역을 오가며 협력관계를 구축한 인물들도 크게 기여하였다. 해방 이후 북·중관계의 특징은 공식적 관계와 비공식적 관계가 혼재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북·중관계 형성에 기여한 동북·북한지역의 일부 간부는 해방 전 동북항일연군의 김일성·주보중부대에서 활동한 사람들이었다. 공식적 북·중관계는 해방전후 동북지역·북한지역 간부들의 비공식적 인적 관계를 통해 완성되었다. 1945~1947년 북·중관계는 공식·비공식 계통을 통해 형성되었고, 동북지역의 조선인 사회와 중국혁명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동북지역으로 진출한 조선인간부들은 당·정권기관·군대를 건설해 조선인들을 보호하고 조직함으로써 조선인 사회와 중국혁명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1946년 전후 북한 측의 지원은 초기 중국내전의 승패를 가르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또한 다수의동북항일연군·조선의용군 간부들이 조선인들로 편성된 부대를 이끌고 중국내전에 참전해 중국혁명에 기여하였다. 결국 1945~1947년에 형성된 북·중관계는 북·중혈맹의 근원이자 국교수립의 기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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