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최인호 소설의 반공주의적 성격에 대한 규명을 목표로 씌어졌다. 최인호 소설에 대해 반공주의적 접근을 한 연구는 전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만 최인호가 작품활동을 시작했던 1970년대는 반공주의와 발전주의가 결합하여 반공병영사회를 형성했던 시기로서 이 반공주의에 영향을 받지 않은 개인이나 사회단체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만큼 반공주의적 폭력이 난무하던 시기였다고 하겠다. 더구나 미국 대통령 닉슨의 데탕트 정책으로 정국은 혼란에 혼란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 엄혹한 변화의 시기에 정국은 요동을 치고 있었고 이러한 정국의 변화에 문단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따라서 그러한 문단에 간신히 한 발을 걸쳤던 최인호로서도 당시의 문단 내 논쟁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문단 내 논쟁 상황 뿐만 아니라 국내의 사회적 상황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던 최인호의 소설을 이 민감한 시대 상황을 지배했던 반공주의 이념과 관련시킨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접근이라 할 만하다. 그럼에도 그러한 접근이 거의 없었다는 것은 어쩌면 기이할 정도로 이상한 현상이라고 할 만하다. 실제로 최인호 소설은 아버지 영향을 압도적으로 받아 이것이 그의 대부분의 아이모티브 소설에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아버지가 한국전쟁때 인민군의 체포를 피해 서울 청계산 자락에 움을 파고 도피생활을 했다고 한다면 일제 때 변호사였던 아버지의 사회적 위치를 고려해 볼 때 그 아버지의 이념적 성향이 어떠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 아버지에 대한 최인호의 강한 애정을 토대로 볼 때 최인호의 반공주의에 대한 입장 또한 분명하리라 사료된다. 부친 사후 이 아버지의 역할은 황순원과 박영준 등이 맡았을 것이라 추정된다. 이 반공주의는 윤리적 성격을 띠고 있는데 북한을 반윤리적 집단으로 남한을 윤리적 국가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최인호의 소설에는 이러한 이념적 성격이 상당히 은폐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당대의 지식층의 대사회적 경향이 대부분 지배 권력에 비판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러한 그들의 시선에 자신이 기회주의자로 몰리지 않기 위하여 그의 소설은 그 주제가 분명치 않은 모호성으로 포장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그 모호성을 벗기고 그 안을 보면 최인호의 반공주의적 성격은 생각보다 매우 완고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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