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시기 북한과 중국은 동맹관계를 유지하였다. 하지만 북중관계가 항상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양국 간에는 갈등과 긴장도 존재하였다. 1956년 8월 사건에 대한 중국과 소련의 간섭으로 인한 북중관계의 악화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하지만 북중은 일정한 시간과 과정을 거쳐 긴장과 갈등을 해소하고 본래의 견고한 동맹관계를 회복하곤 하였다. 본고는 이를 북중관계의 ‘탄성’이라고 명명하였다. 북중관계의 ‘탄성’은 안보위협에 대한 양국의 공통된 인식으로부터 크게 기인하였다. 즉 안보위협에 대한 북중의 공동인식이 양국관계를 밀착시켰다. 또한 이념과 체제의 동질성, 국경을 맞대고 인접했던 지리적 특성은 북중관계를 결속시켰던 조건과 배경이 되었다. 그런 측면에서 국공내전과 한국전쟁 시기, 그리고 전후 정전체제 하에서 북중이 강하게 밀착될 수 있었던 것은 북중의 생존과 안보를 위협했던 외부의 적대세력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1956년 8월 사건에 대한 중소의 공동 간섭 이후 북중관계가 악화되었고, 1957년부터 중국이 북한에 대한 유화정책을 실시하면서 양국관계의 긴장은 완화되었다. 주목되는 점은 외부의 위협이 아닌 1956년 10-11월 폴란드·헝가리 사태로 인한 사회주의 진영의 내부적 위기가 긴장완화의 배경이 됐다는 사실이다. 폴란드·헝가리 사건은 사회주의 진영 전체를 혼란과 충격 속에 몰아넣었다. 소련은 사회주의 진영의 안정과 단결을 위해 폴란드·헝가리 사태에 적극 관여했고, 중국도 소련의 정책과 방침을 적극 지지하였다. 북한도 동유럽 사태 처리에 대한 중소의 입장을 지지하면서 헝가리의 ‘반혁명 세력’을 강하게 비난하였다. 폴란드·헝가리 사태에 대한 북한과 중국의 일치된 입장은 양국관계의 긴장이 완화될 수 있던 계기를 마련했다. 이러한 사실은 북중관계의 긴장을 해소하고 양국관계를 다시 견고하게 만들었던 동력, 즉 북중관계의 ‘탄성’이 사회주의 진영의 내부 위기에서부터 비롯됐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런 측면에서 1956년 하반기 폴란드·헝가리 사건은 북중관계의 긴장이 해소될 수 있었던 하나의 ‘기회’와 토대를 제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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