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운은 식민지시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관점에서 『조선사회경제사』와 『조선봉건사회경제사』를 저술하여 식민주의 사관을 극복하고 한국사의 보편적 발전 과정을 증명하려고 하였다. 특히 고대사의 영역을 다룬 『조선사회경제사』의 緖論에서 「단군신화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발표한 바 있다. 여기에서는 일본인 연구자들의 단군 인식을 비판하기도 했지만, 최남선, 신채호 등 민족주의 역사가들의 단군신화 해석에 대한 비판이 중점이었다고 생각된다. 특히 당시는 학술계에서 조선학운동의 흐름이 가시화되던 시기였으며, 이미 단군이 조선의 역사와 문화의 기원이자 상징으로 대중적인 영향력을 획득하고 있었다. 세계사적 보편성 속에서 조선사를 체계화시키려 노력한 백남운의 관점에서는 단군으로부터 기원하고 상징되는 조선 민족의 형상화는 ‘하나의 특수한 문화사관’이며, 과학적 역사관으로 조선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위협적인 ‘반동적’ 역사관에 다름 아니었다. 이에 백남운은 단군신화가 계급사회의 산물이며 시대에 따른 변화의 가능성을 지적하면서 단군이 실재적이지도 특정한 인격자도 아님을 분명히 하였다. 해방 이후에도 백남운은 『조선사회경제사』에서 제기한 단군신화론을 견지하고 있었다. 미군정 아래에서 부르주아민족주의자들이 교육이념으로 홍익인간을 차용하려고 할 때에도 일제의 그것과 다름없는 국수적 반동사관이라고 적극적으로 비판하였다. 또한 한국전쟁기 저술로 추정되는 『조선력사』에서도 기존의 단군신화 인식에 근거하였고, 이후 북한학계에서 진행된 단군신화 토론회에서도 자신의 신화 인식을 견지하였음이 확인된다. 그러나 당시 북한 역사학계는 고조선과 단군신화를 연결시키려고 했기 때문에 백남운의 단군인식은 비판을 받게 된다. 이러한 흐름은 당시 김일성에 의한 ‘주체의 제기’라는 배경에서 북한 역사학계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에서 민족주의 역사학의 관점을 보다 강화시키려는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울러 이 과정은 완고한 마르크스주의자였던 백남운이 북한 역사학계에서 서서히 배제되어가던 정황을 암시한다고 생각된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