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팔양은 1924년 <동아일보>에 입사한 이후 12년 동안 일제강점기의 거의 모든 한글신문에서 활동했다. 신문사들의 경영부실이나 내분이 영향을 주었고 부당한 현실에 맞섰던 그의 성향도 작용해 여러 신문사를 옮겨 다녔던 것이다. 그럼에도 박팔양이 기자와 편집자로서 식민지 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언론활동을 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는 1937년에는 만주로 건너가 만주국 기관지 <만선일보>에서 근무했다. 광복 후에는 북한으로 가서 <로동신문>에서 활동했다. 그가 재직했던 <동아일보>, <만선일보>, <로동신문> 세 신문의 이름만으로도 그의 삶이 얼마나 크게 요동쳐 왔는지를 알 수 있다. <만선일보>와 <로동신문>에서의 활동으로 인해 그는 ‘친일’과 ‘월북’이라는 두 가지 멍에를 짊어지게 되었다. 박팔양은 좌와 우, 항일과 친일, 남과 북, 숙청과 복권 등 식민지와 분단체제 속에서 파란만장하고 복잡다단한 삶을 살았다. 만주행이나 북한행은 그에게 ‘어려운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피’이자 ‘새로운 희망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식민지와 분단이라는 현실에서 나름대로 이상을 추구하다 좌절을 경험하기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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