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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1950년 북한의 과학기술과 근로인민 형성에 대한 인식

The Recognition of Scientific Technologies and People-Making in North Korea, 1945-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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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세영
소속 및 직함 숭실대학교
발행기관 국학연구원
학술지 동방학지
권호사항 (174)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1-31
발행 시기 2016년
키워드 #소련   #소련 과학기술   #기계와 인간의 결합   #창발성(창의성)   #‘소비에트 테일러리즘’   #이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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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는 1945~1950년 사이 북한에서 소련과 소련의 과학기술을 어떻게 인식하였으며, 소련 과학기술의 수용이 근로인민의 형성에 어떻게 연관되는지에 대해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남북 분단 상황에서 정권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인민의 지지를 얻기 위하여 북한 정권은 소련을 통해 과학기술을 비롯한 선진문화를 배우고 수용하고자 하였다. 사회주의 소련의 경험은 북한이 유용하게 따라 배워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소련 또한 ‘후원자’로서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 북한에 과학기술을 비롯한 문화를 전파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북한 정권과 지식인들은 소련 여행을 통해 소련에서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정력적으로 관찰하였다. 그들은 소련의 문화와 인민의 모습 속에서 사회주의 제도의 우월성을 느꼈다. 또한 사회주의 제도 하에서만이 과학기술이 급속히 발전할 수 있고, 그러한 과학기술을 습득하면 북한의 인민도 소련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최첨단 공장에서 기계와 노동자가 혼연일체를 이루는 것이 바로 사회주의 사회의 이상형이라고 이해하였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북한 정권은 당면한 현실을 해결하기 위한 측면에서 과학기술의 보급과 전파를 통해 인민을 ‘과학화’하고자 하였다. 특히 산업현장에서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게 과학기술을 주입하여 부족한 기술인력을 충당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다. 산업현장에서는 ‘기술공백’을 메우기 위한 고투 속에서 첫 2개년 계획 기간에는 창의성을 발휘하는 노동자가 가장 과학적인 근로인민으로 추켜세워졌다. 분단 정부 수립 이후에는 노력합리화를 명분으로 하는 ‘소비에트 테일러리즘’의 도입이 본격화되었다. 자신의 육체를 가장 과학적․합리적으로 움직여 생산에 매진할 것이 노동자에게 요구되었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