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에서는 현지조사를 통해 수집한 6.25전쟁 체험담 자료에 대해 그 목록과 함께 주요 양상을 소개하였으며, 그 담론 특성을 살피고 이야기들 속에 육화된 세계관적 신념을 조명해 보았다. 한국전쟁 체험은 노년층 세대의 구술현장에서 매우 중요한 화두를 이룬다. 사람들은 이야기 형태의 체험담을 통해 역사와 현실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면서 내면화한다. 그것은 경험적으로 체화된 신념의 성격을 지니며, 함께 겪은 역사를 기반으로 한 집단적 세계관의 성격을 지닌다. 본 연구에서는 그 특징적인 국면을 일곱 가지 측면에서 가늠해 보았다. 첫째, 전쟁을 경험해 봐야 세상을 제대로 안다는 것이다. 전쟁을 겪으면서 인간과 세상의 밑바닥 맨얼굴을 보게 된다. 둘째, 총을 쏘면서 전투를 하는 일뿐 아니라 먹고사는 일을 비롯한 존재 자체가 전쟁이라는 인식이다. 셋째, 절박한 상황에서 사람은 본질적으로 자기 안위를 먼저 돌보게 돼 있는바, 자기 앞가림은 자기가 해야 한다고 하는 관념이다. 넷째, 가까운 사람이 더 무섭다고 하는 경험적 관념이다. 급박한 상황이 되면 ‘나’를 잘 아는 가까운 사람이 무서운 적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하고 경계해야 한다. 다섯째, 어려울 때일수록 서로 도와야 하며, 그렇게 주고받은 도움이 평생의 힘이 된다는 것이다. 전쟁이라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인간과 세상에 대한 긍정적 관점을 지킨 경우다. 여섯째, 결국 힘없는 사람이 당하게 돼있는 것이 세상살이이니, 살기 위해서는 힘을 가져야 하고 ‘빽’이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전쟁이 끝난 뒤까지 오래도록 우리 사회를 움직여온 집단적 관념에 해당한다. 일곱째, 전쟁을 겪지 않은 젊은이들이 세상을 똑바로 보고 각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호전성과 위험성을 가볍게 보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이들 전쟁체험 세대의 두드러진 의식을 이룬다. 전쟁체험 세대를 이해하고 세대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경험적 이야기와 맞물려 있는 이러한 체화된 신념들에 대한 신중하고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본 연구에서 제시한 여러 화두 각각에 대하여 문학적・역사적 관점을 연계한 보다 깊이 있는 고찰이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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