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북한에는 여러 파벌이 존재했다. 김일성을 제1인자로 한 북한정권이 수립되었으나 북한 정권 초기에는 김일성의 항일빨치산 세력인만주파가 독점적인 권력을 확보하지는 못했다. 여러 정파가 북한 정권의권력을 분점하고 있었다. 당시 북한에는 만주파뿐만 아니라 중국공산당과 함께 항일활동을 전개했던 연안파, 고려인으로 이루어진 소련파, 일제시기 북한 각 지역에서 활동한 여러 인물들이 망라된 국내파, 그리고 박헌영을 중심으로 한 남로당 세력이 있었다. 김일성은 앞에 설명한 파벌들에 대해서 연안파, 이르꾸쯔크파, 오기섭파, 박헌영파로 지칭하며 비판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정파들은 1950년대를 거치며 전부 숙청되었다. 박금철로 대표되는 갑산파는 1950년대에 반종파투쟁에 앞장섰고 만주파와 구분되는 새로운 김일성 직계세력으로 부상하였다. 그리고 항일무장투쟁의 유일성에 대해서 김일성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다가 1967년에 전격적으로 제거되었다. 박금철에 대해서 북한에서는 갑산파로 지칭하지 않고 반당반혁명적인 수정주의자로 규정하였다. 갑산파는 다른 파벌과 비교해 볼 때, 성격과 특징이 매우 달랐다. 본 연구에서는 갑산파라는 명칭의 유래와 더불어 그 범주에 포함되는 인물들 간의 관계에 대해서분석하였다. 지금까지 갑산파 인물에 대해 혼선이 발생하기도 하였던 것은 박금철과 갑산파 구성원의 긴밀한 관계를 간과하였던 것이 큰 이유라고 할 수 있었다. 갑산파는 1950년대 반종파투쟁의 공로자이자 수혜자였다. 갑산파는 다른 파벌과 달리 대표적 인물인 박금철의 리더십이 확고하였다. 또한, 만주파처럼 하나의 정파라는 유대감과 결속력이 매우 높았던 정치세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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