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조선은 내외적으로 혼란스러웠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정권을 장악한 흥선대원군은 대내외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중앙집권체제 강화에 힘썼다. 1872년에 재정권과 군사권을 완전히 장악하였으며, 같은 해에 『1872년 지방지도』가 완성되었다. 이 지도는 각 지방의 자세한 지도로 조선시대 관찬지도(官撰地圖) 제작사업의 마지막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고지도에는 제작 당시의 시대상과 사회적 인식이 이미지를 통하여 종합적으로 나타난다. 본 연구는 『1872년 지방지도』보다 100여 년에 제작된 『해동지도』, 한 해 전에 제작된 『관북읍지』와의 비교연구를 통하여 『1872년 지방지도』의 특수성과 당시의 시대상을 파악하는데 목적이 있다. 『해동지도』는 중앙이 중심이 되어 제작된 지도로 지형도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1872년 지방지도』는 지역사회가 중심이 되어 제작된 주제도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지역사회의 특수성이 더 잘 드러난다. 『1872년 지방지도』는 『관북읍지』의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을 그대로 그린 것은 아니며, 『관북읍지』보다 자세하고 잘못된 정보는 수정을 거쳤고 새로운 정보는 추가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 각 지방에서 끊임없이 지역의 인문․자연정보를 새롭게 축척하고 수정해 나갔다는 것을 반증해준다. 『1872년 지방지도』에는 체계적 국가 운영체계가 상징적으로 잘 드러나며, 이것은 흥선대원군의 중앙집권체제 강화의 결과물 가운데 하나이다. 『1872년 지방지도』는 19세기 후반 조선의 지역사회 모습을 파악 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더욱이 북한에 대한 정보와 접근의 한계를 가지는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함경도 등 북한지역의 지도는 매우 중요한 사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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