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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중반 북한 혁명전통 다원화 시도와 혁명전통 논쟁: 박금철의 처 서채순 관련 『로동신문』 보도를 중심으로

The Attempt about Diversification of Revolution's tradition and the Disputation of Revolution's tradition in mid 1960's - Focused on the obituary of the Rodong Sinmun about Seo Chae-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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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조우찬
소속 및 직함 북한대학원대학교
발행기관 통일연구원
학술지 통일연구
권호사항 20(1)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195-221
발행 시기 2016년
키워드 #박금철   #갑산파   #서채순   #한인민족해방동맹   #혁명전통   #조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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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1960년대 초의 북한은 김일성 단일지배체제가 등장하고 정치적, 경제적으로 자신감을 내비친 시기였다. 이 무렵에 나타난 제한적 다원성의 경향으로 인하여 이례적으로 만주파와 갑산파 인물들과 관련된 출판물들이 발행되기도 하였다. 이 시기는 갑산파의 정치적 위상이 상당히 높았던 때로 자신들의 항일활동이 혁명전통의 범주에서 제외되는 것은 일절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혁명전통 다원화를 과감하게 전개하였다. 그 단적인 예는 1965년 12월에 박금철의 처인 서채순의 부고기사가 파격적으로 『로동신문』에 보도된 것이었다. 이것은 조국광복회 산하의 한인민족해방동맹의 항일활동을 강조한 것으로 혁명전통 다원화가 전개된 것이었다. 이처럼 박금철의 정치적 위상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로동신문』의 서채순 관련 보도 이후에 얼마가지 않아 북한은 권력구조 개편과 함께 혁명전통의 유일성에 대한 논쟁이 본격적으로 점화되었다. 본 논문은 서채순의 사망을 알리는 『로동신문』의 기사가 박금철의 정치적 영향력과 함께 갑산파의 결집력을 공개적으로 드러내 보인 계기였고 이와 동시에 혁명전통의 다원화 시도가 강력하게 전개되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를 기점으로 하여 권력 재편과 더불어 혁명전통의 유일성과 관련한 논쟁이 문학예술 영역에서 촉발되었다. 그리고 1967년 상반기부터 북한 사회는 혁명교양과 항일유격대의 항일운동이 집중적으로 강조되는 분위기 일색으로 전환되었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