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남북분단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전후 처리 과정의 산물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패전국 일본 대신에 전승국인 미국과 소련에 의해 각각 분할 점령되면서 인위적으로 창출되었다. 예술은 자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종교나 정치권력 등으로부터 자신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지 이미 오래이다. 적어도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예술을 위한 예술’은 그 자체로 이데올로기가 되다시피 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삶의 공동체를 짓누르는 남북 ‘분단과 통일’이라는 정치적 이슈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미학예술학적 과제와 교차된다. 첫째, 분단 현실 뒤집기에 다름 아닌 통일은 또 하나의 혁명 즉 새로운 창출이라는 점에서, 포이에시스의 성격을 지닌다는 점에서 미학예술학의 과제이다. 둘째, 둘 다 공통감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예술 역시 통일이라는 분단 극복이라는 정치적 프로젝트와 실천적인 행위를 공유한다. 그렇지만 정치적 통일이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정치적 통일이 혁명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 문화적이고 내적인 통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통독 이후의 그림논쟁(Bild-Streit)은 그 실상을 잘 보여준다. 주로 수령상, 사회주의 혁명투쟁과 새 국가건설, 6.25 전쟁, 국가영웅과 사회주의 ‘지상낙원’ 찬미 등을 주제로 채택하고 있는 공식적인 ‘북한미술’들은 북한의 정치체제의 통제 아래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외양상 남한의 미술과 성격을 달리하며 이질성을 드러낸다. 그런 북한학이라는 이름 아래 ‘북한미술’을 단지 타자화하며 제아무리 ‘주체적 사실주의’ 미술을 객관적으로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문화적 통일을 창출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한계를 지닌다. 북한의 ‘주체적 사실주의’는 외양상 남한미술이 추구했던 추상적인 이른 바 ‘한국적 모더니즘’이나 현실적인 민중미술과도 판이하다. 하지만, 민족 문화 정체성이라는 이슈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분모를 지닌다. 식민성과 근대성을 뛰어넘는 작업이나, 예술이 분단 이전의 공통의 문화적 기억과 경험에 대한 탐색을 통해 새로운 일상생활에서 혁신을 나날이 누적시키는 일은 남과 북이 공동성을 확보해 내는 데에 필수적인 일이다. 결국 진정한 새로운 창출로서의 통일은 정치적 헤게모니 전략보다는 예술용어, 근대성에 의해 왜곡된 삶의 회복 등 삶의 공동체 구성원들이 공통감을 확보해내고 새로운 혁명적 전환으로서 문화적 통일의 성취는 그것을 담보해낼 다양한 미학예술학적 목표 설정과 장치들의 동반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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