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KAPF)의 핵심 맹원으로서 식민지 조선에서 영화, 연극, 미술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활동을 펼쳤던 강호(姜湖 1908~1984)는 1946년 월북한 이후 미술가, 비평가로서 북한 영화미술 및 무대미술 분야의 실천과 담론을 주도했다. 특히 1957년 「카프 미술부의 조직과 활동」으로 본격화된 그의 비평 작업은 1960년대 절정에 달해, 이 시기 『조선미술』, 『조선예술』, 『조선영화』 등 다양한 지면에 발표된 그의 글은 20편이 훌쩍 넘는다. 1960년대 강호의 문예비평은 초기 북한문예가 사회주의리얼리즘을 체화하는 과정에서 직면했던 문제들을 확인하기 위한 중요한 단서일 뿐 아니라 ‘카프’로 대표되는 식민지 프롤레타리아 문예가 북한문예와 연결되는 지점을 확인하기 위한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1960년대 강호 문예비평의 주제는 크게 1)1920~1930년대 카프활동의 회고와 카프의 역사적 평가, 2)영화 및 연극 무대미술에서 부분과 전체의 관계, 3)무대미술에서 민족적 특성 문제 등으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 카프의 회고에서 강호는 카프를 근대 최초의 사회주의리얼리즘으로 평가하는 관점을 제시했다. 카프 미술과 영화가 사회주의리얼리즘이 요구하는 ‘전형적인 인물과 환경’, ‘혁명적인 낙관성’을 해방 이전에 선취했다고 보는 그의 관점은 당시 카프를 북한문예의 전통으로 확립하고자 했던 구(舊) 카프계 성원들의 욕망을 대변한다. 둘째, 무대미술에서 부분과 전체의 관계를 논하면서 강호는 ‘고상한 집체성’이라는 개념을 내세웠다. “자기완결적인 부분들의 순차적 결합”으로 요약되는 그의 ‘고상한 집체성’론은 전체의 구성에서 부분(개체)의 독립성, 자율성을 중시하는 견해로 주목할 필요가 있으나 1960년대 후반 북한문예가 몰입을 극대화하는 전체적 효과(내지 스펙터클)를 중시하는 쪽으로 기울게 되면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강호식 무대미술에서는 “생활이 흐르지 않고 토막토막 끊어진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끝으로 강호는 무대미술의 민족적 특성을 문제 삼으면서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의 유기적 연결을 강조했다. 즉 그는 ‘고상한 집체성’ 개념의 연장선상에서 외적 묘사가 반드시 역사-사회와 결부된 내적 특성과 결부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내적 특성’에 대한 탐구를 결여한 외적 형식을 그는 사회주의리얼리즘이 배격할 ‘도식’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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