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초소에서』는 1952년의 전쟁상황과 평화담론을 보여준다. 이 기념시집의 핵심어는 전쟁의 시공간을 보여주는 ‘초소’와 ‘평화’이다. 8.15해방의 문맥을 전유한 이 기념시집은 핵전쟁의 위기 아래 전쟁의 당위성을 평화라는 키워드에 담아냈다. 소련을 주축으로 한 평화진영의 핵 반대 운동과 같은 국제정치적 상황은 당시 전쟁 개념과 담론에 영향을 끼쳤다. 기념시집을 횡단하는 ‘평화’는 휴전협정의 막바지에서 정치 도덕적 우세함을 바탕으로 종전을 이끌려는 담론이면서, 북한의 정체성 발명에도 기여하였다. 전쟁 공간인 ‘초소’는 영웅을 목격하고 전쟁의 당위성을 선전하는 체제 문학의 공간으로서 재현되었지만, 균열점 또한 발견되었다. 전쟁의 이면을 고통으로 기록한 개인의 기억들은 파편적인 흔적으로 남아있었다. 숭고한 죽음의 이면에는 원한과 불면이 있었으며, 전사의 투쟁과 용기 이면에는 가족의 해체와 이별의 비극이 있었다. 전후 재건 계획들은 전쟁에 대한 피로감을 보여준다. 긍정적 전망과 희망 이면에 놓인 절망과 죽음에의 공포는 국가기억에서 소외된 기억흔적들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적 구속으로서 평화담론이 지배한 이 시집의 행간에는 국가기억이 구속하지 못하는 고통과 슬픔과 같은 지문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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