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푸에블로호 나포 이후 판문점에서 이루어진 북미 협상은 냉전시기의 남북미 삼각관계의 악순환을 보여준다. 존슨 행정부는 군사적 대응과 외교적 대응 방안을 검토했으나, 승무원의 석방을 위해 북한과의 직접협상에 나섰다. 북한은 판문점 회담에서 미국으로부터의 체제인정, 한미균열, 그리고 국내선전 효과를 중시했다. 판문점 회담의 1단계인 1차 회담(2.2)부터 7차 회담(2.16)까지 양측은 푸에블로호의 영해침범 여부를 둘러싸고 대립했다. 2단계인 8차 회담(2.20)부터 15차 회담(4.22)까지는 사과의 수준과 조건을 둘러싼 공방이 벌어졌다. 3단계는 16차(5.8)부터 마지막 회담인 29차 회담까지로 미국 측의 ‘부인을 전제로 한 사과’라는 방식로 마무리 되었다. 최종 방안인 ‘부인을 전제로 한 사과’가 교착을 타개하고 협상을 마무리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협상 성공의 결정적 변수라고 보기 어렵다. 북한은 정치적인 선전 효과를 충분히 달성했다고 판단한 시점에서 승무원을 석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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