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학병세대의 서사 중에서 일본군 병영에서 중국 공산군 지역으로 탈출했던 수기들을 고찰하였다. 중국 공산군 점령구로 탈출한 학병들은 조선의용군으로 편입되었다. 의용군이 된 학병들은 한국광복군이 된 학병들의 숫자와 비교하여 적지 않았고 44년부터 46년에 걸쳐 항일무장투쟁 전선에서 활동하였다. 이 과정에서 학병세대의 자유주의적 근대성과 의용군의 공산주의 노선이 갈등을 일으켰다. 학병들은 합리적 공론장을 원했고 조선의용군은 공산주의의 국제노선을 따르길 요구했다. 양측은 정치공동체가 통일성 있는 정체성을 구성하기위한 공동의 서사를 공유할 수 없었다. 이로 인해 고국을 향한 두 번째 탈출이 이어진다. 학병세대의 항일무장투쟁의 공로에도 불구하고 북한으로 귀국한 학병세대에게 감시와 투옥이 이어지자 월남을 선택하게 된다. 일제말기 조선의 최고 지식인집단에게 공산주의는 지식이었다. 지식으로서의 코뮤니즘이 현실화 될 때 나타나는 변수가 합리적 근대성을 거스를 때 내 · 외적 갈등이 일어났다. ‘연안’으로 갔던 학병들이 북한에서의 감시와 적대를 피해 월남한 후 남한 사회의 중추적 역할을 해나갈 때, 그들에게 주어진 공론장에서 정치적 자유주의를 주장함으로써 정치적 공동체의 공동의 서사를 구성하는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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