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1948년 월북하여 그 생애와 활동 내역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영화인 박학에 관한 연구이다. 이 논문에서 본 연구자는 박학의 삶과 그의 영화 활동에 관한 내역을 크게 네시기로 나누어 살폈다. 첫 번째 시기는 일본 내에서 조선어연극운동 시기, 두 번째 시기는 해방 전까지 연극, 영화 활동 시기, 세 번째는 해방부터 월북 시까지진보적 연극운동시기, 네 번째는 월북 이후의 시기이다. 네 개로 나누어 살핀 박학의 삶을 통해 확인 한 것은 박학의 행적이 1930년대중반 이후 조선연극인들의 진보적 연극운동의 궤적과 일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쿄의 조선예술좌에서 시작되어 해방 후 예술극장으로 이어지는 월북 직전까지그의 연극 활동은 소위 “예술극장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진보적 민족연극 수립”을 위한 노력의 과정이었다. 이러한 연극배우로써의 행적과는 달리 월북이후의 활동은 주로 영화를 통해이루어졌다. 북한 최초의 극영화 <내고향>에 출연한 이후 1960년까지 많은 수의영화에서 주역을 맡았던 그는 1961년 <분계선 마을에서>를 시작으로 영화 연출가로 전향하여 <꽃파는 처녀>를 비롯해 1960∼70년대 북한의 대표적인 작품들을연출했다. 그가 배우에서 연출가로 성공한 이유 중 하나는 무대배우로써의 경험과 영화배우로써의 경험이 북한에서 이루어지고 있던 무대극을 영화로 만드는 작업에유리하게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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