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는 한 지역의 정체성이 자아와 타자의 경계를 짓는 과정이며 이는 그 지역의 지배 담론과 깊이 관련 있다는 전제 아래 동북아 지역 정체성의 담론적 구성요건을 유럽과의 비교를 통해 고찰한다. 유럽연합은 문화·정서적 차원의 동질감인 ‘원초적 요건’에, 평화·경제·안보 등의 측면에서 각 국의 이해관계가 얽힌 ‘현실적 요건’이 결합하면서 만들어 낸 공식적 지역 공동체라 할 수 있다. 정체성 차원에서 유럽은 그 외부에 부정적 ‘타자’를 구성하고 이와의 관계에서 긍정적 ‘자아’를 형성함으로써 지역 공동체 형성에 좋은 여건을 창출했다. 19세기 동북아의 문명 담론은 서구를 문명의 정점으로, 동양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반문명’ 또는 ‘반개화’의 상태로 인식함으로써 그 긍정적 타자를 지역 외부에 구성했다. 제2차 대전 이후 발전 담론에서는 경제발전의 수준에 따라 일본-한국-중국의 위계를 설정하고, 반공·냉전 담론에서는 북한과 중국을 ‘적대적 타자’로 설정함으로써 역내 국가 간 이질성을 극대화했다. 동북아에는 지역적 자의식을 형성할 만한 정서적 동류의식이 약하고 국가 간 안보 차원의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지역 공동체 형성의 ‘원초적’, ‘현실적’ 요건이 모두 미흡한 상태다. 이 글은 동북아의 ‘지역 정체성 없는 지역화’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역내 국가 간 위계적, 적대적 인식을 벗어나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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