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희곡 <겨레>(1946)를 중심으로 해방 직후부터 월북 이전까지 남한에서 이루어진 연극인 박영호의 극작 활동을 파악하고, 작품 속에서 작가가 추구했던 ‘혁명적 리얼리즘’과 ‘살림으로서의 연극’이 어떻게 구체화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박영호는 해방 이후부터 월북에 이르는 1년 동안 극단 혁명극장과 함께 세 편의 희곡을 무대에 올렸고, 해방 후 연극계의 상업주의, 공식주의, 예술지상주의를 모두 비판했다. 그는 조선의 리얼리스트 연극인은 현실을 정확히 보고 파악하여 작품화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예술의 임무를 사회적 공감과 협동에서 찾았다. <겨레>는 여성 해방을 다룬 희곡이자 국제주의적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해방기 좌파의 희곡 중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혁명가가 아닌 그의 아내를 중심으로 한 여성 3대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동시대 이념극과 차별화된다. 작가는 다른 신념을 가진 여성인물 간 의 대립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며, 전환기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서로 다른 선택에 의미를 부여한다. 또한 결말부에서는 팔로군(八路軍)을 등장시켜 민족반역자를 배제한 이후 사회주의 이념에 입각한 국제적인 인민의 연대를 제안하고 있다. 곧 <겨레>는 해방 후 박영호의 연극관이 전면화된 작품이자 조선연극동맹의 지향점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박영호의 혁명적 리얼리즘은 남한에서는 급진적 사회주의 사상으로, 북한에서는 무사상적, 퇴폐적인 자연주의라 비판받았고, 결과적으로 작가는 자신의 연극관이 남과 북에서 두 번 부정당하는 광경을 목도해야 했다. 여기서 그간의 작가 연구가 식민지시기의 연극 활동-텍스트에 집중되어 이루어졌음을 감안할 때, <겨레>를 통해 식민지시기부터 월북 이후까지를 아우르는 작가의 극작세계에 대한 논의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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