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중국에서의 북한영화 제작과 상영에 대한 역사적 상황과 당시 등장한 북한영화들이 중국에서 불러 온 사회적 반향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해방 직후 북한 영화산업은 북조선영화촬영소의 설립을 거쳐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발발 직후 미군의 폭격으로 평양지역은 파괴되어 예술영화제작은 더 이상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북한에서는 한국전쟁기 북한영화제작이 김일성의 지도하에 북한영화인들이 큰 어려움을 극복하고 북한지역에서 혼자의 힘으로 이루어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논문에서 본 연구자는 관련 자료를 통해 이러한 주장을 반박하고 중국동북영화제작소에서 1951년 중반부터 1953년 말까지 약 3년간 북조선영화촬영소 영화인들을 수용하여 그들에게 물질적 도움과 인적 지원으로 북한영화가 제작될 수 있게 협조했다는 숨겨진 사실을 복원하는데 주력했다. 또한 이 논문에서는 한국전쟁기 제작된 <소년 빨치산>을 비롯한 5편의 북한예술영화들이 중국에서 상영되어 큰 호응을 얻었다는 사실을 밝혀내었다. 한국전쟁 기간 중 중국정부는 북한의 전쟁선전영화를 상영함으로서 중국인민들에게 민족주의 강화, 국제주의 선양, 공산주의에 대한 신뢰를 강조했다. 이는 신중국 설립 직후 중국정부가 중국인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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