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잊혀진 전쟁’으로 기억되는 한국전쟁의 ‘의도적 망각’에 맞서 국가 경계 바깥에서 씌어진 포로서사의 수행성을 분석하였다. 남북한과 미국, 중국 등은 냉전기 각 국가의 이념적 우월성을 증명하고 공적 기억을 구축하는 수단으로 한국전쟁을 각기 다르게 전유하여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하였다. 자유송환의 과정에서 본국 송환을 결정한 포로들은 부역 행위와 사상성을 의심 받으며 처벌의 대상이 되었고, 중립국행 포로 역시 이중변절자 취급을 받으며 공적 기억에서 삭제되었다. 하 진의 전쟁 쓰레기와 폴 윤의 스노우 헌터스는 실증적인 역사 기록과 인물을 서사의 자원으로 활용하면서도 전쟁포로에 대한 공적 기억을 배반하고 교란하는 새로운 역사 쓰기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회고록과 소설이라는 양식을 줄타기하며 거대 역사를 개별적인 서사로 모자이크하는 작업은 각국에서 가공한 역사가 은폐한 진실을 교차적으로 드러내고 대항 기억을 생산・유통하는 실천으로서, 기억의 국경을 넘나드는 글쓰기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문한다. 국가 기억과 체제의 장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이민자 정체성과 ‘영어’라는 타자의 언어는 재현 불가능의 영역에 폐색되어 있던 포로의 존재를 간국가적(transnational) 상상력 속에서 가시화하고 이데올로기적 국경을 넘어서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창작의 조건이자 전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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