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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고려 궁성 출토 點刻銘 초기청자의 성격과 제작 배경

Characteristics and Production Backgroun of Early Celadon Dot-engraved Inscriptions Excavated from Goryeo Palace in Kaeso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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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귀한
소속 및 직함 민족문화유산연구원 부원장
발행기관 인문과학연구소
학술지 인문과학연구논총
권호사항 45(3)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63-95
발행 시기 2024년
키워드 #고려 궁성   #초기청자   #점각명   #광종   #왕실 관련 명문   #공상   #김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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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개성 고려 궁성은 고려의 본궐(本闕)로 다양한 고고학적 자료가 매장되어 있다. 남한과 북한은 8차례에 걸쳐 공동으로 고려 궁성을 발굴조사하였다. 그 결과, 고려시대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새로운 고고학 자료가 확보되었다. 도자사의 측면에서 본다면 점각명(點刻銘) 초기청자가 바로 그러한 자료이다. 이 글에서는 고려 궁성에서 출토된 점각명 초기청자의 현황과 성격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고려 초 왕실재정사의 일면을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초기청자에 표기된 ‘供上’ 등의 점각명은 대부분 왕실과 관련된 명문이다. 지금까지 고려 궁성에서 출토된 점각명 초기청자 가운데 완은 모두 내저곡면식이다. 선행 연구 성과에 의하면 내저곡면식완의 제작 시기는 940년대에서 11세기 초반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점각명 초기청자의 제작 배경을 고려할 때 그 중심시기는 960~990년대 후반으로 생각된다. 고려 광종대는 왕실행사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따라서 왕실재정 수요도 급증하였다. 왕실재정의 부족분은 국가재정에서 전용(轉用)하였다. 차는 연회나 왕실 의례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였다. 다구(茶具)인 청자의 수요도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왕실은 국가재정에 속하는 청자까지 왕실재정으로 소비하였다. 그 과정에서 그릇의 성격이나 용도 변화를 점각명으로 표기한 것으로추정된다. 점각은 소비지에서 그릇이 기존의 목적과 다른 용도로 사용될 때 명문을 표기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이다. 점각이라는 기법을 활용하였다는 점과 점각명이 왕실과 관련된 명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점각명 초기청자는 국가재정이 왕실재정으로 전용된 것을 입증하는 실물자료로 이해할 수 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점각명 초기청자의 출토 현황
Ⅲ. 점각명 초기청자의 성격
Ⅳ. 점각명 초기청자의 제작 배경
Ⅴ. 맺는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