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북한 정부는 민주개혁을 실시하여 여성 ‘해방’을 법적으로 보장했고;여성들을 새로운 국가건설에 헌신하도록 유도했다. 한국전쟁 기간 남성들이 전쟁에 동원되면서 여성들은 가정;사회;직장에서 그 공백을 메우게 되면서 성별노동의 해체를 가속화했다. 전후복구사업을 추진하면서 더 많은 노동력을 요구되었고;정부는 사회주의 산업화에서 여성 노동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여성을 경공업과 비생산 부문에;남성을 중공업에 배치하여 노동효율성을 높이고자 했다. 이에 따라 점차 여성 정책의 보수화가 시작되었고;도농여성의 역할도 세분화 되었다. 1950년대 베이비붐으로 인해 비생산 인구가 증가하면서 사회적 비용이 증가했다. 북한 정부는 ‘전국 어머니 대회’를 통해 남성의 노동 유동성을 감소시키고 육아을 가정에 부담시키면서 여성들은 현명한 아내와 훌륭한 어머니가 되도록 요구받았다. 1961년 이후 여성 정책의 보수화가 가속화되었고 이는 오늘날 보수화된 여성정책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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