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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함경남도 端川郡 주민의 생활 양태 -1896년 新滿面 ‘新式戶籍’ 자료의 분석 사례

The Dwelling Living Aspects of Residents in Dancheon-gun;Hamgyongnamdo Province in the Late 19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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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임학성
소속 및 직함 인하대학교
발행기관 한국역사민속학회
학술지 역사민속학
권호사항 66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67-122
발행 시기 2024년
키워드 #京都大學 總合博物館   #新式戶籍   #함경남도   #端川郡   #新滿面   #戶口   #寄口   #借有戶   #率人   #挾戶   #家宅   #임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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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논문은 일본 京都大學 總合博物館에 소장되어 있는 戶籍 자료를 분석하여 19세기 말 함경남도 端川郡에 거주한 주민들이 어떠한 양태를 보였는가를 살펴본 것이다. 분석 대상으로 삼은 호적 자료는 ‘新’戶籍法이 처음 시행된(1896년 9월 1일자) 1896년(건양 1)에 작성된 이른바 ‘新式戶籍’으로 端川郡 新滿面 6개 里의 주민 244戶의 戶籍表를 成冊한 것이다. 연구를 통해 확인된 주민 양태의 특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전체 주민 가운데 ‘남의 집에서 한식구처럼 의지하며 사는’ 寄口 인구가 18.2%의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1호당 평균인구수가 9.6명으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둘째, 기구를 제외한 호주 가족만의 1호당 평균인구수도 7.8명으로 높게 나타났으며, 家族 구성의 최다 인구수는 14인(2~14인 가족 분포)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가족 중에는 6~10인 구성이 집중(전체의 57%)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셋째, 이처럼 가족의 인구 구성이 ‘多人家族’의 양상을 보인 주된 이유는 동거친속에 등재된 친족의 범위가 8, 9촌까지 존재할 정도로 넓었던 때문이었다. 그리고 친족 범위를 기재하지 않은 ‘族’人 및 ‘率’人도 동거친속란에 등재되고 있었다. 이처럼 호주와 친족 범위가 넓은 자들은 바로 挾戶ㆍ挾人이었다고 판단하였다. 넷째, 전체 243개 家戶 중(1개 가호는 가택 내용 미기재) 瓦家는 116호, 草家는 127호로 나타나 다른 지역(특히 남한)과 비교하여 와가의 비율이 매우 높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와가는 총 499칸, 초가는 총 415칸으로 나타나 와가의 규모가 초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컸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다섯째, 가택의 규모(칸수)는 총 914칸으로 집계되어 1호당 평균 3.75칸의 가택에서 거주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택의 소유 여부를 알려주는 己有(자기 소유의 집)와 借有(타인 소유의 셋집) 분포에서는 전체 244호 중 240호가 기유에서 거주하였고, 단 4호만이 차유에서 거주하였음이 확인되었다. 이상, 1896년 함경남도 단천군, 특히 신만면을 이루고 있던 6개 里에 거주하고 있었던 주민들의 양태에서는 남한은 물론 북한 지역 내 다른 지역에서도 일반적으로 확인되지 않는 특징들이 다수 발견되었다. 그런 점에서 이 연구 결과는 비교사적으로 적잖은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목차
1. 머리말
2. 지역 및 자료
3. 주민의 생활 양태
4.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