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는 지난 2007년 이래 해외 각 지역에서 수행되는 한국학의 다양한 맥락을 탐색하는 작업을 진행 중에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동아시아 학술사의 재구성을 위한 지식인 집단에 대한 총합적 연구’라는 목표 아래 집단전기학(Collective Biography)이라는 방법론에 착목하게 되었다. 20세기 초반 서양 학계에서 정립된 집단전기학은 개인들의 전기적 약전(略傳)을 수집하고 이를 나열하는 작업 및 그러한 전기 자료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특정 집단의 역사성을 포착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이러한 방법은 일부 엘리트들의 관념적 지향을 사회 변동의 추동력으로 간주하던 전통적 역사 서술에서 벗어나, 보다 많은 사람들의 현실적 관계에 대한 통계와 분석에 기반하여 사회적 연결망과 이동성을 분석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한국 역사학계를 돌이켜 보면 집단전기학이라는 용어는 대단히 생소하지만, 그러한 문제의식과 방법론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기록의 나라’라 칭해지는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풍부하고 다양한 종류의 집단전기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 자료들은 첫째, 인명록과 같이 특정 범주에 속하는 인물군 전체의 정보를 망라하려 시도한 인물지(人物志), 둘째, 편찬자의 주관적 판단 아래 특정한 이념 및 기준에 부합하는 인물들을 추려내어 수록한 인물전(人物傳)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한편 근대 이후 성립된 위인전집류 또한 수록 인물의 선정 과정 및 그들에 대한 평가를 통해 편찬자의 역사관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문서 및 인명록 등을 기반으로 한 전형적인 집단전기학과는 또 다른 차원의 집단전기학을 구성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러한 자료들은 학술적 검토가 충분히 이루어지기 어려운 지역 혹은 시대, 예컨대 해방 이후 북한학계 등을 들여다보기 위한 접근 방식의 하나로 활용될 수 있다. 그 예로서 2011년 간행된 『조선력사인물』의 내용을 검토한 결과, 사회주의 역사 서술의 출발점인 계급성에 더하여 자주성으로 규정되는 민족 담론을 결합시켜야 한다는, 주체사상 성립 이후 북한 역사학이 직면하고 있는 고민이 여러 인물들의 전기를 통해 표출되고 있다. 최근 서양 학계의 집단전기학 연구는 컴퓨터를 활용한 인물 자료의 전산화 작업에 기반하여, 지배층 위주의 사례 연구에서 일반 대중을 포괄하는 계량적 분석으로 이행되고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한국에서의 집단전기학 역시 디지털 인문학과의 결합을 통해 20세기 이후의 서구중심적 근대주의와 같은 지배적 담론 및 이데올로기의 계보 아래 구성되어 온 기존 역사 서술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효과적 방법론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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