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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炳淵(1896~1965)의 해방 후 『평양지』 편찬과 민족주의적 식민지 기억의 차질

Kim Byeong-Yeon`s Compilation of Pyongyangji after Liberation and the Setback of the Nationalist Colonial Mem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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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주동빈
소속 및 직함 중앙대학교
발행기관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학술지 한국민족운동사연구
권호사항 119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265-299
발행 시기 2024년
키워드 #동우구락부   #수양동우회   #이북5도청   #고당전ㆍ평양지간행회   #‘식민지 개발’   #도시정치   #부(협의)회   #“근대평양”   #중산층 사관   #주동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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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는 1964년 『평양지』가 식민지기 한국 민족주의의 첨병으로 자칭했지만, 자기평가에 모순이 있던 점에 주목했다. 김병연(金炳淵, 1896~1965)은 고당전ㆍ평양지간행회(이하 ‘간행회’)를 통해 『평양지』 간행을 주도했다. 그는 일제하 민족운동가이자 평양 도시정치에 깊이 개입하였으며, 해방 후 10년 간 초대 이북5도청 평안남도지사를 지냈다. 간행회는 식민지기 평양의 사회운동가들과 언론계 인사로 구성되었고, 동향 기업가들의 후원을 받았다. 식민지기 자신들은 안창호와 조만식 영도의 “민족자본” 육성과 “근대평양” 건설을 주도했으며, 민족 각성의 선구자였다고 했다. 이 관점을 중산층 사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일제하평양부는 어떤 도시보다 조선인이 부(협의)회를 통해 ‘식민지 개발’의 과실을 향유했다. 북한 향토지나 훗날 한국의 식민지기 연구는 부(협의)회참여를 친일이라 했다. 따라서 일제하 평양 로컬리티의 민족주의적 재현은 해명되거나, “민족자본” 육성과 긴밀했던 부(협의)회 기억을 소거해야 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김병연의 행적과 고당전ㆍ평양지간행회 구성
Ⅲ. 평양지의 중산층 史觀과 민족주의적 식민지 기억의 차질
Ⅳ.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