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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강 이범석(1925~1983)의 생애와 인도주의 활동 – 대한적십자사 활동을 중심으로 -

The Life and Humanitarian Activities of Chogang Lee Bum-Suk - Focus on the work of the Korean Red C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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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유상수
소속 및 직함 여순사건위원회
발행기관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학술지 한국민족운동사연구
권호사항 119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341-378
발행 시기 2024년
키워드 #이범석   #대한적십자사   #포로교환   #인도주의   #청소년적십자   #뉴델리회의   #남북적십자회담   #빅스위치작전   #유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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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초강 이범석은 1960년대 외무부 공무원으로 채용된 후 통일원, 외무부장관 등을 역임하였다. 외무부장관으로 역임하던 1983년 미얀마 아웅산국립묘지에서 북한의 테러에 의해 희생되었다. 공직생활을 하면서도 이범석이 추진한 주요활동은 인도주의에 기반한 남북대화업무였다. 그의이런 활동은 대한적십자사에서의 인도주의 활동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대한적십자사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한국전쟁 당시 미국적십자사통역 경험이 계기가 되었다. 미국적십자사의 통역으로 대한적십자사와깊은 관계를 맺고 있던 이범석은 포로교환문제에 있어 대한적십자사의대표로 참여하게 되었다. 포로교환이 종료된 후에는 대한적십자사에서청소년적십자 활동에 주력하였다. 한국정부에서는 학도호국단 이외에학내 조직은 불허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은 청소년적십자활동에 있어불모지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이런 어려운 여건 속에서 그는 미국적십자사의 통역으로 활동하며 경험한 타국의 적십자활동을 토대로 청소년조직을 결성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적십자활동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했던 한국에서 중고생을 중심으로 강습회 등을 개최하며, 청소년적십자단을 초석을 마련했다. 이외에도 미국적십자사 활동을 토대로 국제협력활동을 수행하였다. 미국, 캐나다, 일본 등과의 국제협력을 담당했을 뿐만 아니라 국제적십자위원회 회의에 한국대표로 참석하며 대한적십자사의 인도주의 활동을 뒷받침하였다. 이런 경험은 1961년 공직으로 진출했던 그가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 당시 대한적십자사로 복귀하여 남북적십자회담 수석부대표로 활동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