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월북한 국문학자 신구현의 삶과 학문의 궤적을 통해 근대 한국 지식사의 단면을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912년에 태어나 2000년대까지 식민과 해방, 분단과 냉전을 가로지른 신구현의 일생은 근대 한국 지식의 굴절과 변형의 양상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 글은 우선 경성제대 시절 예과 11회 동기생들과의 독서회 활동, 졸업후의 조선어학회 경력과 임화가 경영한 학예사에서의 『역대조선여류시가선』 출판, 조선공산당재건운동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출소하여 정양 중에 해방을 맞이한 신구현의 식민지 시기의 삶과 학술적 이력을 검토하였다. 해방 이후 신구현은 원산 노력자 정치학교교장으로 근무하다가 김일성종합대학 설립과 더불어 교수로 임용되었다. 임용 이후 그는 김일성종합대학교 교직원 세포위원회 위원장, 조선어문연구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며북한의 어문 개혁 사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일련의 숙청 과정을거치면서 신구현의 학술적 정체성도 변화를 겪게 된다. 신구현은 이른 시기부터 실학파및 고전문학과 카프의 사실주의 등 조선의 진보적 전통과 주체성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연구를 진행했다. 1950년대 중후반을 거치면서 그의 학술은 점차 김일성이 강조한 주체적인 문예학으로 수렴되었다. 1960년대를 넘어서면서 마르크스주의에 토대한 경성제대고전문학 전공자 신구현은 주체 사상을 설파하는 주체의 문예학자로 변화하게 되었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