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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민요 연구 초기에 참고한 쏘련ㆍ중국ㆍ헝가리의 사례

The Soviet Union;China;and Hungarian Cases Referenced in the Beginning of the Folk Song Research in Nor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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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권도희
소속 및 직함 경북대학교
발행기관 한국민요학회
학술지 한국민요학
권호사항 70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7-42
발행 시기 2024년
키워드 #북한   #민요 연구. 쏘련   #중국   #헝가리   #권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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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는 북한이 민요 연구를 시작할 때 보다 먼저 민요에 관심을 가졌던 쏘련, 중국, 그리고 헝가리의 사례를 어떻게 참고했는지 살펴보았다. 북한은 늦어도 1954년 전후로 쏘련과 중국의, 그리고 1956년 전후로 헝가리의 사례를 참고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쏘련이 제시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문예론에 따라 민요를 노동 인민의 노래로 주목했고, 또 쏘련 엘리트 음악계의 민요론이, 즉 민요를 재해석한 음악이 국가주의 혹은 애국주의 음악을 강화하는데 요긴했다는 점을 주목했다. 한편, 북한은 민요를 분석하기 위해 음악 기호와 그 의미를 파악하고자 했던 아사페브의 억양론을 수용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들은 매우 추상적이었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는 연구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이에 북한은 실제 민요에 접근했던 중국과 헝가리의 사례를 참고했다. 북한은 중국의 연안파가 제시했던 민요론을 수용했다. 그런데 정작 북한이 연안파의 민요론을 참조할 무렵에 발생했던 8월 종파 사건(1958)과 중국의 문혁 기간 중에 벌어진 중국인들의 김일성에 대한 비판은 북중 관계를 긴장시켰다. 이에 북한은 중국에서 민요 연구를 주도자 려기(呂驥), 마가(馬可) 등등의 연구물을 참고하기는 했지만, 공적으로 중국 연안파의 민요론을 참고한 기간은 지극히 짧았다. 중국 민요론에의 접근하기 곤란해질 무렵, 북한은 헝가리의 사례를 주목했다. 헝가리는 20세기 벽두부터 민요 연구를 시작했고 또 이를 국가적 과제로 발전시켰기 때문에, 국가적 사업으로 민요 연구를 하고자 했던 북한은 이를 검토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북한은 헝가리가 민요 연구를 위해 어떤 제도를 마련했는지, 즉 민요 연구 기관의 설치 현황과 각각의 기관들이 연구 절차를 어떻게 관리하고 통제했는지 조사했다. 또한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쳤던 코다이를 만나 민요 연구 전반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1960년 이후로 헝가리 민요 연구계의 지형이 달라지면서 북한은 더 이상 헝가리 사례를 검토하지 않았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