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한국전쟁을;북한의 중립화실현전략의 연관 속에서 규명하고;이를 통해 북한과 일본 혁신정당 간의 관계에서 나타난 내재화된 불안정성이 북일정당 관계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드러내고자 하는 시도이다. 한국전쟁 당시;북한과 일본공산당은 프롤레탈리아 국제주의로 이뤄진 당제관계(党際関係)로서 북한에 적극적으로 호응했으며;이에 더 나아가 일본혁명을 이루고자 하였다. 이러한 일본혁명은 일본 중립화라는 전략으로 표현되었으며;북한도 이에 대해 강하게 호응하였다. 즉 북한은 민전(재일조선인 민주통일전선)을 포함한 일본공산당과 의견이 일치되어 공동투쟁에 대해 수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일본 중립화 실현을 위한 허용범위내에 포함된 것이었다. 하지만 일본공산당이 민전을 포함한 조선인들을 노동혁명;전위투쟁에 전면으로 내세워 민전과의 갈등이 시작되었으며;결국 내재화된 불안정성이 표면화되어 일본공산당으로부터 결별하게 되는 수순에 이르게 된다. 한편 일본사회당은 한국전쟁에 맞추어;당의 태도를 통해 북한남침론을 강하게 주장하였고; 일본의 안보 및 세계평화라는 구조적인 요인내에서 국제연합의 지지;평화론이라는 현실적 혁신정당의 역할을 모색하였다. 이러한 역할은 북일 당제관계(党際関係)에서 우호당으로서의 위치가 실추되더라도 당내파벌을 잠식시키기위한 결정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북한과의 관계에서 진일보하지 못하는 장애요인(내재화된 불안정성)을 동반하게 된 것이다. 북한과의 관계복원이라는 측면에서 좌파사회당은 지속적으로 정전이후에 한반도 비무장화와 평화적해결 역할을 모색하였다. 이러한 과정 속에 북한과 일본공산당과 일본사회당의 당제관계(党際関係)의 기본틀이 형성되었다. 따라서 대일관계에 관한 남일(南日) 북한 외무상의 성명이 발표되자;프롤레탈리아 국제주의를 바탕으로 기민하게 당제관계(党際関係)가 성립되고;형제당;파트너쉽관계를 확고하게 만들었다는 측면에서 한국전쟁 당시의 북・일당제관계(党際関係)는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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