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반 이후 북한에서 발표된 봉산탈춤 관련 글은, 반복해서 1946년 6월 4일 봉산탈춤의 ‘첫 공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민족문화유산을 보존해온 ‘김일성 지도육성론’을 주장하는데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까지의 연구에서 ‘첫 공연’에 대한 의미부여를 찾을 수없었다. 이에 이 논문에서는 1960년대 중반까지 북한에서 간행된 연구성과를 새롭게 복원함으로써 ‘1946년 김일성 지도육성론’을 해체하고, 다양하게 수행된 연행 및 연구 양상을 분석하였다. 북한 당국은 이미 1946년 11월 3일 선거를 계기로 민속 공연을 정치적으로 활용했고, 전후 복구과정에서 사회주의적 애국주의를 표방하면서 봉산탈춤의 연행과 함께 연구가 행해졌음을 밝혔다. 선행연구에서는 한효『조선 연극사 개요』(1956), 김일출『조선 민속 탈놀이 연구』(1958), 권택무『조선 민간극』(1966) 등을 개별적으로 다루었을 뿐이다. 이들 책은 국내에서 흑백으로 영인되어, 컬러 사진과 그 의미는 주목되지 못했다. 이 논문에서는 원본을 확인하고, 새롭게 발굴한 신영돈, 고정옥, 박종성 등의 연구성과를 분석하였다. 현지 조사에 기초한 민속학연구는 신영돈과 김일출에 의해 수행되었다. 신영돈과 김일출은 과학원 공동조사를 통해 얻은 3개의 봉산탈춤 대본을 비롯해 다수의 황해도탈춤 대본을 바탕으로탈놀이를 연구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수 있다. 한편, 한효와 고정옥, 권택무는 문학사적 관점에서‘가면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봉산탈춤만을 주목하고 특별시 하였다. 이에비해 1960년대까지 전개된 북한의 봉산탈춤 연구는 황해도탈춤 연구의 일환에서 수행되었다는특징이 있다. 이 글에서는 한효, 김일출, 권택무 등의 영인본에 한정된 연구를 극복하는 한편, 새로운 자료를제시함으로써 1960년대까지 전개된 다양한 봉산탈춤의 연구성과를 검토하였다. 그러나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관련 연구가 부족해, 다수의 연구성과를 분석하다 보니, 이 글에서는 봉산탈춤을위주로 검토했다는 한계가 있다. 북한에서 전개된 탈춤 연구에 대한 종합적 분석과 함께, 1970년대이후의 분석은 남겨진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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