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로만 니콜라예비치 김의 추리첩보소설 『순천에서 발견된 수첩』이 동시대 사회주의권에 번역·수용된 양상을 분석하여 한국전쟁을 둘러싼 사회주의적 상상력의 지형을 재구성해보고자 한다. 동시대 미완의 전쟁인 한국전쟁을 다룬 『순천』은 당시 사회주의 전쟁소설의 보편적 서사 양식인 인민 영웅이 등장하지 않는 이례적인 작품이다. 패전 후 전 일본군 참모가 미 제국주의와 결탁해 제3차 세계대전으로서 한국전쟁을 획책하는 과정을 그림에 있어 『순천』은 실제 역사적 사건과 인물의 실명, 지명 등을 폭넓게 활용해 역사추리소설로서 그 설득력을 높였다. 그리고 주인공 안병학이 이 같은 제국주의의 음모를 간파하고 폭로함으로써 종국적 승리의 역사적 필연성이 입증된다. 일본—한반도—중국—미국을 아우르는 트랜스내셔널 서사는 『순천』이 사회주의 세계문학으로서 번역·유통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순천은 발표 직후 북한,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와 그 너머 세계 사회주의 진영으로 번역되었는데 특히 GHQ 점령하 일본의 경우 대대적인 검열과 수정에도 불구하고 번역·수용되었다. 이는 전후 일본 좌익 담론에서 『순천』이 갖는 의미를 방증하며 『순천』에 내포된 사회주의적 상상력의 스펙트럼을 드러낸다. 이 같은 사회주의 주변부에서의 상상력의 굴절과 변용은 한반도라는 복잡한 맥락과 그 다층적인 효과를 보다 입체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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