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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제네바회담 전후 재일교포 북송문제와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의 태도

The study on Japanese Korean repatriation and the attitude of the International Committee of the Red Cross (ICRC) before and after the Geneva Conference of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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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장경호
소속 및 직함 강원대학교(삼척캠퍼스) 강원전통문화연구소
발행기관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학술지 한국민족운동사연구
권호사항 120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311-350
발행 시기 2024년
키워드 #맥아더 2세   #부와시에르   #빌라드   #북한적십자사   #일본적십자사   #한국적십자사   #국제적십자위원회   #장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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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연구는 국제적십자위원회가 1959년 12월 재일동포의 북한 송환을 의미하는 이른바 ‘북송문제’에 대한 대처 양상을 제네바회담 시기 전후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 이 시기는 북송문제가 일본적십자와 북한적십자에 의해 합의되었고, 이 회담을 전후하여 ICRC가 각 나라 간의 입장 차를 좁히기 위하여 다수의 의견을 주고 받았던 시기였다. 1959년 ICRC의 입장은 인도주의 원칙 아래 자발적 송환의 원칙을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제네바회담 개최 이전인 1956년 7월 16일, ICRC는 북송문제를 언급하였으나, 한국 측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12월, ICRC는 일본적십자와 한국적십자 측에 재일동포의 자유로운 선택을 강조하였고, 이 문제는 일본적십자가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1959년 1월~6월, ICRC는 ‘ICRC가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미국의 적극적 개입 속에서도 중립을 지켰고, 북한적십자-일본적십자간 입장 차로 회담이 난항을 겪는 와중에 1959년 6월 24일 갑작스럽게 송환 문제의 합의를 보게 되었다. 주일미국대사 맥아더 2세와 주 제네바 미국대사 빌라드는 ICRC가 ‘관찰자’의 역할로 축소된 것을 인지하였고, 재차 ICRC의 ‘중재자’ 역할을 강조했지만, ICRC는 이 합의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으며 중립을 고수했다. 제네바회담 이후 북송문제가 진행되자, 미국은 한일관계 개선에 북송문제가 걸림돌이 될 것을 우려하였다. 미국은 재일동포의 한국 송환프로그램(Positive Program)을 제안하였으나, 이승만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ICRC 역시 제네바회담에서의 북송문제 합의 이후에 중립을 고수했다. 북송문제가 진행되자 한국과 일본 측에서 ICRC의 개입을 요청하였다. 먼저, 주일한국공사 유태하, 한국적십자사 손창환 회장 등이 나서 ICRC 가 이 문제를 보류해줄 것을 원하였다. 일본 역시 ICRC가 북송을 허용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ICRC는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보류하였다. 결국, 8월 캘커타회담에서 최종적 송환 절차가 논의되어 ICRC의 인원이일본 니가타에 주재하기로 하고, 송환자 심사를 하는 등 ‘합의’를 하였다. 한국 측에서는 뒤늦게 재일동포의 한국 송환을 논의하였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ICRC가 제시한 인도주의적 원칙 아래 자발적 송환의 원칙은 북송문제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흘러갔고, 여러 구술에서도 보이듯실질 심사과정에서 ICRC가 제시한 원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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