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정세 완화와 한반도 남북 대립이 심화되는 가운데 1984년 4월 남북 올림픽회담이 열렸다. 판문점에서의 세 차례 체육회담은 “싸워도 깨지지 않는” 형국으로 남북한이 상대 정권을 공격하는 ‘선전전(宣傳戰)’으로 전락했다. 사마란치 IOC 위원장은 1988년 올림픽이 더 이상 보이콧되지 않도록 남북 양측 대표를 로잔으로 초청해 회담에 참가시켰다. 소련 등 사회주의국가들이 서울올림픽 출전 의지를 내비치자, 사마란치는 기회를 틈타 남북한 양측에 외교적 압박을 가했고, 남북은 어쩔 수 없이 IOC위원회의 초청을 받아들여서 로잔 올림픽회담에 참석했다. 로잔 회담에서는 공동 개최와 경기 배분 등을 놓고 치열한경쟁이 벌어졌다. 북한은 올림픽 명칭과 조직위원회 등에 대해 ‘공동 개최’ 명분을 유지하면서 8개 종목 이상의 경기를 개최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한 반면 한국이 실질적인 양보를 원하지 않아, 로잔 회담은 네 차례 만에 결렬되었다. 판문점에서의 ‘선전전’이든 로잔에서 의 물과 기름 같았던 ‘공동 개최’ 논쟁 과정은 모두 자신의 “합법성”에 대한 평양과 서울 정권의 불안감을 반영한 것으로서, 올림픽 회담은 남북한 정권의 ‘합법성’의 경기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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