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강원도 양양지역의 토박이인 구술자 이효춘의 가족이야기를 통해서 양양지역의 근현대사를 다룬 것이다. 양양지역은 해방직후 북한지역에 속했다가 한국전쟁으로 ‘수복’된 곳이다. 극단적인 이념대립의 시대에 이 지역 주민들은 두 차례에 걸쳐서 서로 다른 체제를 강요받게 된다. 또한 일제가 수탈을 위해 이 지역에 건설한도로·철도·항만시설은 한국전쟁기 남북 모두의 전투로와 군용시설로 이용됨으로써 이지역의 전쟁 피해를 가중시켰다. 이효춘의 가족사는 조부모와 부모, 그리고 이효춘 자매의 3대 생애이야기로 이루어져있다. 대대로 양양지역에서 살아온 이들 토박이 가족 3대의 삶은 식민지·해방·전쟁·분단이 양양이라는 지역사회를 어떻게 바꾸어놓았는지 그 비극적인 과정을 잘 보여준다. 이와 더불어 그 비극적인 생의 시험대 위에서 이들 가족들은 저마다 어떻게생존전략을 구사하면서 삶을 살아왔는지, 그 역동성도 잘 보여준다. 이 논문은 크게 세 시기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식민지시기 양양지역의 변화와 가족사이다. 이 시기 양양지역은 3.1운동과 농민조합운동이라는 저항운동이 격렬하게전개되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일본인들에 의해 지역사회가 주도되면서 수탈과 개발이 동전의 양면으로 전개되었다. 양양지역의 유지가였던 이효춘의 가족은 저항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또 한편으로 식민지 근대화 과정에서 부를 축적하였다. 둘째, 해방과 북한체제 하에서의 가족의 삶이다. 부친은 직접적으로 농사를 짓지않았기 때문에 이효춘의 가족은 대부분의 토지를 몰수당했다. 부친은 북한체제에 비판적인 ‘흰패’가 되었고 월남을 꿈꾸었다. 그리고 일제시기 유통업에 종사한 경험을 바탕으로 남북 밀무역에 종사하였다. 그러나 이효춘의 자매는 북한사회에서 고등교육을 받았다. 일제시기 이 지역민들의 교육에 대한 열망은 대단하였다. ‘흰패’의 자녀들에게도제공된 교육의 기회는 이효춘의 가족이 쉽게 월남을 단행하지 못한 배경이 되었다. 셋째. 전쟁과 수복의 경험이다. 6.25전쟁은 양양의 원주민 사회를 붕괴시키고 몰락시켰다. 밀고 당기는 ‘톱질전쟁’에서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했고, 국군의 소개작전으로 모든 마을이 전소(全燒)되었다. 청장년층 대부분은 인민군에 입대하였거나피난을 떠난 상황에서 이 지역은 ‘수복’되었다. 살아남은 원주민들은 ‘북한 사람’도 ‘남한사람’도 아닌 경계인으로 오랫동안 피해의식 속에서 살아왔다. 원주민들 대신해서지역사회의 주도자로 등장한 것은 함경도와 평안도의 피난민들이었다. 이들은 속초 발전의 주역이었으며 1963년 속초면을 양양에서 분리시켜 속초시로 승격시켰다. 이주민에 의해 원주민 사회가 잠식되는 지역사의 격변이 전후 10년 사이에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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