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후반에 아세아문제연구소(The Asiatic Research Center)와 일본국제교류센터(The Japan Center for International Exchange)는 한일지식인교류회의(Korea-Japan Intellectual Exchange. KJIE)를 시작했다. KJIE는 한일 양국의 진정한 화해를 도모한다는 취지를 내세웠고, 안보와 경제의 의제를 부각하여 한일 간의 협력을 강조했다. KJIE가 갖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에 유의해야 한다: 첫째, ARC와 JCIE는 미국 록펠러재단과 포드재단의 후원으로 설립된 기구이고 KJIE의 개최에도 이들 민간재단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다. 둘째, KJIE의 참가자들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들이 다수였고, 미국의 사회과학 이론 및 방법론을 적용한 영어 논문으로 소통했다. 셋째, KJIE는 미일지식인교류회의(‘시모다회의’)의 모델을 모방하여 설계되었다. 시모다회의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적으로 만났던 미국과 일본이 이제 안보와 경제의 이익을 위해 적대를 순치하여 우호와 친선의 관계를 만들어간다는 기획에서 출발했다. KJIE는 이러한 시모다회의의 기획을 한국과 일본 간의 관계에 적용한 것이었다. KJIE에서는 한국과 일본 간의 산업경쟁을 회피하고 북한의 위협에 맞서 일본의 역할을 강화하는 안이 논의되었다. KJIE에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헤게모니가 쇠퇴하는 속에서 일본의 역할을 강화하려는 미국의 이해관계가 투영되었다. 그러나 이 기획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절제와 변화가 필수적이었다. KJIE에 참가한 한국의 지식인들 가운데 일부는 이를 불신했고, 일본을 본받아야 할 모델로서 인정하지 않았다. 한일 간의 지식교류는 불화를 내포하였다. 이 글은 록펠러아카이브센터의 자료를 통해 이러한 사실을 밝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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