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련 기관지는 일상적인 생활을 비롯해 정치, 문화, 그리고 당시 귀국을 선도하고 귀국한 예술가의 근황을 전하기도 했다. 총련과 민단은 1960년 전후 남북의 정세로 큰 변화가 있었고 예술분야에서는 총련과 민단이 이례적으로 합동 문화제를 열기도 했다. 예술가들 중에서도 미술가들의 활동이 두드러졌던 이유는 총련과 민단 각 조직이 결성된 이후 계속 대립상태였는데 1961년에 한시적이기는 하지만 합동으로 문화제와 함께 ‘련립전(連立展)’을 개최했기 때문이다. 개최 계기는 한국의 ‘4⋅19 혁명’, 김일성의 ‘남북연방제안(南北連邦制案)’ 등 남북 정세의 변화와 함께 민단 단장이 바뀌며 곧 통일이 될 것이라는 희망 아래 개최를 계획했던 것이다. 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와 중립입장의 『統一朝鮮新聞(통일조선신문)』은 문화제와 ‘련립전’에 대해 보도하고 있었지만 민단 기관지 『民主新聞(민주신문)』은 보도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민단의 단장이 또 다시 바뀌고 민단 내부에서 합동 문화제를 반대했기 때문이다. 재일조선인 미술가들은 1950년대 후반부터 총련의 지원으로 주어진 테마로 공동 제작과 미술전을 개최하고 있었으며 1962년에 『재일조선인 화집』까지 발행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북한의 ‘집단 창작’이라는 의도가 내재하고 있었다는 것도 부정할 수가 없을 것이다. 미술가들의 공동(합동)제작은 짧은 기간 내에 양성하기 어려운 미술가를 북한으로 흡수하는 과정의 하나라고도 볼 수가 있다. 귀국한 미술가들은 ‘조선화’를 토대로 개인적인 창작 활동보다는 각지의 공장과 농촌을 찾아가 집단적인 창작 활동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작품 활동에 한계를 느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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