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6․25전쟁기 북한 농촌에서 전쟁이 인민들에게 해석되고 전달되는 방식과, 농민들을 생산전선으로 동원하기 위해 북한 지도부가 구축한 논리를 『농민신문』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전쟁기 북한은 전쟁 피해 복구와 식량 생산, 전선 원호를 위해 후방 농민들을 지속적으로 동원해야 했고, 핵심적인 선전선동 매체로서 신문의 역할을 강화하였다. 신문이 전쟁 경험을 구성하고 해석하는 방식은 시기에 따라 달라졌으며, 이를 통해 농민들에게 전달하고자 한 공통적인 전쟁 인식을 확인할 수 있다. 1950년 말 유엔군 점령을 겪은 직후 신문은 농촌 각지에서 미군이 입힌 피해를 적극적으로 고발하는 역할을 했으며, 이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을 공통된 감정으로 도출해냈다. 그러나 1951년 중반 이후 전선이 고착되고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신문 보도는 전쟁 피해의 참상보다는 어려움을 이겨내는 열성농민들의 의지와 투지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화하였다. 또한 농촌에서 전시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전선과 후방의 연결을 지속적으로 강조하였으며, 전쟁의 의미를 역사적이고 국제적인 맥락에서 해설함으로써 생산전선의 농민들을 설득하고자 했다. 전시 농업생산에 인민들을 동원하기 위해 신문은 모범기사와 비판기사 형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전쟁기에는 특히 인민군대의 가족 및 애국열사 유가족이 농촌사회의 새로운 주체로 주목받았고, 특히 적극적으로 생산전선에 나선 후방 여성들이 모범사례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이때 여성들은 여전히 가족의 위계관계 속에서 호명되었고, 가정의 운영과 생산활동을 병행하는 이중부담을 지게 되었다. 이들은 국가와 사회의 도움을 받기보다 스스로 생산적 주체가 되려는 자조(自助)의 태도를 갖출 때 모범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비판기사의 주된 소재는 경종법에서의 보수성과 농업경영에서의 이기적인 태도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러한 비판의 내용은 개인경리(個人經理)의 원칙이 유지되면서도 전시생산에 대한 국가의 개입과 통제가 강화되는 국면에서 발생한 국가와 농민 간의 긴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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